가고싶은 데로 가옵소서 - 박재삼 시인 가시는 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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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 애틋하면서도 끈끈한 정한(情恨)과,막걸리빛 삼베빛 가락과,만나면 언제나 손부터 주시면서 은연히 내비추던 눈웃음을 어디에다 두고 가시는 겁니까. 이 땅의 진정한 시인,박재삼 시인이여. 어질게 착하게 자라 이날 이적까지 오로지 그렇게 사신 당신이었습니다.어떤 날카로움도 무지막지함도 당신의 부드러움 앞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고 마는 것을 우리 누구라 할 것 없이 잘 봐오던 터였습니다.

그런 시인이었으니 당신의 시세계는 한정된 독자층을 뛰어넘어 참으로 폭넓고도 다양하게 접근되었을 것입니다.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의 시는 남녀노소를 죄없는 사랑의 슬픔,가없는 그리움으로 울렸습니다.조작이 아닌 우러남,우리 예사로 여겨 놓쳤거나 못본 구석구석을 찾아낸 남다름,그 같음을 타고난 당신의 가락이 천의무봉(千衣無縫)하게 구성하여 우리 그처럼 애지중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놀랍다 하는 것은 한 형제 시인이 어떻게 그다지 일관된 인자함과 덕실(德實)을 가지면서 끝까지 궁핍한 시의 길만 빚을 수 있었느냐는 그것입니다.당신의 생애에는 떡값이 얼마만큼한 돈으로 와닿았던 것인지 궁금합니다.또 노향림(盧香林) 시인과 이 소제(小弟)가 당신을 위해 모금한 사실이 있기에 절통한 가슴으로 묻습니다.

30대 중반에 고혈압으로 쓰러졌던 당신,이래 원고지를 지평으로 삼아 한자루 만년필에 의지해 살아냈던 당신,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햇살내린 삼천포(三千浦)앞바다이기나 한듯이 잔잔하게 웃던 당신,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하신 당신,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조선시인입니다.

이제는 김정립(金正立)형수님과 딸 소영,아들 상하.상규가 당신을 조용히 모실 것입니다.

큰 형님! 뒤돌아보지 말고 가옵소서.무지개빛 긋던 눈부신 삼천포 갈매기로 날아가고 싶은데로 가옵소서. 서 벌〈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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