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정근모 대사 무모한 욕심이 수모 자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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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가 4일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이집트 출신의 엘바라데이 후보를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했다.우리나라의 정근모(鄭根謨)원자력대사는 한표도 얻지 못했다.

鄭대사는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끝까지 출마의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수모를 자초했다.그러나 이번 일은 鄭대사 개인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다.

鄭대사의 자진사퇴를 끝내 유도하지 못한 정부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꼴이 됐다.정부와 국민이 완전히 따로 노는 한심한 나라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정부는 최후까지 鄭대사의 명예로운 사퇴를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모든 것을 있는대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鄭대사를 설득했는지 궁금하다.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덤비는'돈키호테'쯤으로 치부하고 매도하기에 급급했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그를 설득하려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당초 鄭대사를 원자력대사로 임명하면서 그의 IAEA 사무총장 출마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했었다.그러나 미국의 생각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태도를 바꿨다.처음부터 정부가 모든 것을 따져 현명하게 판단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IAEA 사무총장 출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그런 점에서 국제사회에 고약한 인상을 심어주면서까지 끝내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를 고집한 鄭대사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鄭대사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제원자력계에 대한 신의문제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출마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체제의 전위기구인 IAEA가 미국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는 정치적인 기구라는 것을 鄭대사도 모를리 없다.그걸 안다면 국제원자력계의 지지라는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鄭대사는 막판에 후보등록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깨끗하게 세불리를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鄭대사는 정부가 비록 못마땅하더라도 정부와 입장을 같이했어야 한다.국가 없이 鄭대사가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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