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도 한복판서 벌어진 부끄러운 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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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용산 재개발 농성장에서 빚어진 대형 인명사고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한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이런 충격적 참사가 어떻게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실로 안타깝다. 대한민국은 성숙한 사회가 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단 말인가.

왜 이런 후진국적 사태가 발생했는지 진상부터 규명돼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철저한 진상파악을 지시했고, 한승수 국무총리는 “불법 점거와 해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진실을 밝히겠다”는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당시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밖으로 던지는 등 불법적이고도 격렬한 시위를 벌여, 질서유지와 일반 시민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강제진압이 불가피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의 설명대로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진압의 정당성부터 밝혀야 한다. 아울러 실제 투입된 병력이 행동 매뉴얼에 따라 오차나 실수 없이 행동했는지, 진압병력 투입 시점은 적절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경찰은 철거민 등이 빌딩을 점거해 농성에 들어간 지 25시간 만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대화와 타협으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대테러 임무를 맡은 특공대를 투입할 만큼 시위 양태가 급박했는지도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농성자들은 화염병과 시너로 무장하고 있어 불상사가 충분히 예견됐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에만 급급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지도 규명돼야 한다.

점거 농성에 참여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철거민들의 이해가 아무리 첨예하게 얽혀 있다 한들 화염병을 던지고, 대형 새총으로 골프공을 날리는 극한 투쟁까지 한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이 과격 시위에 나선 배경도 밝혀져야 한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특히 민주당은 “공안통치가 빚어낸 참극”이라며 정치 쟁점화할 태세다. 그러나 이번 참사가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인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야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는 게 옳은 자세다. 신속한 진상규명에 이어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