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이래서야>7. 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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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인류가 지구상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래 종교는 인간과 더불어 있었다.고대사회는 제정일치(祭政一致)를 표방했기 때문에 종교적 가치는 특정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성장한다.서양에서는 기독교,동양에서는 불교가 바로 그러한 절대적 권위를 누려왔다.그 까닭은 역시 종교의 지성적 면모 때문이었다.과학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그 우주적 상상력과 형이상학적 관심은 절대적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죽음의 저 편에는 무엇이 있는가.삶이란 반드시 돈벌고 출세하고 자식키우는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도대체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이와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종교는 적절하게'응답'해왔던 것이다.종교적 가치관을 통해 인간들은 삶의 의미를 설계했으며,보이는 세계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필연성을 모색하게 되었다.그러나 산업사회가 열리면서 종교의 권위는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지동설.진화론과 오늘날의 생명복제등은 종교적 교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종교적 세계관은 과학으로 서서히 이관되고 있다.지적 권위는 대학이 앗아가버렸다.이제 종교의 영역은 도덕성,수도(修道)의 청정성 정도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혁의 와중에서 종교의 세속화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경제법칙은 어김없이 종교사회에도 스며들고 있다.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종교 내부의 물신주의(物神主義)다.

종교 집회는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으며 종교의 성전은 하늘끝까지 치솟을듯 그 위용을 뽑내고 있다.

종교는 이제 더 이상 인간 내면의 고독을 어루만져 주지 않는다.교묘하게 포장된 복(福)을 파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또 자신의 종교만이 오늘의 암흑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은 유례없는 다종교 사회다.불교.개신교.가톨릭.원불교.천도교.대종교.증산교.유교.대순진리회등이 서로의 탁월성을 내세우고 있다.이제 우리는 한국에서의 종교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우려할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일반적인 인간의 정서.감각.가치기준은 상대적인데 반해 종교의 그것은 절대 신념체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선일 때 상대방은 차선이 되고 만다.이 그릇된 옹고집이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이라고 착각한다.이 착각이 대립을 부르고 대립은 투쟁으로 이어지며 투쟁이 끝내 파멸로 이르는 창세기의 일절이 연출된다.그러나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종교는 인간과 사회를 위해'존재해야'한다.결코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내가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그 자신은 고귀한 것이다.이제 한국의 종교는 쓸데없는 자기 맹신과 선각자를 자처하는 치기(稚氣)에서 벗어나야 한다.인간을 위한 종교,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는 역할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미래사회를 선도하는 종교는 결코 그 교세나 종교집회소의 허장성세에 있지 아니하다.

오히려 자신들이 표방하는 진리의 세계에'얼마나 가까우냐'하는 점이 종교적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되리라고 본다.그 내면의 빛이 소리없이 우리 사회를 밝히고 관념적 진리가 실천적으로 나타나는 종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정병조〈동국대 부총장.불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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