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권은 재·보선 민심을 겸허히 살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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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치권은 6.5 재.보선 결과를 무겁게 알아야 한다. 특히 여권은 선거 참패에 대해 겸허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복귀 이후 여권이 보여준 오만과 국정운영의 난맥상에 대한 국민의 경고다.

구체적 사례는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무리한 개각을 추진하다 총리의 사퇴를 불렀다. 차기 총리로 당적변경 인사를 밀어붙이다가 야권의 반발과 내분까지 불렀다. 노 대통령은 대학 특강에서 보수를 폄하해 보수 성향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또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불순한 저의가 있다는 주장을 펴 다수 국민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였다.

여당은 여당대로 "언론.사법 개혁에 당력을 기울이겠다"며 당장의 현안인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한.미 간의 이상징후를 외면했다. 이른바 당내 실세라는 사람들은 어느 장관 자리로 가느냐로 투정을 부리는 꼴사나운 모습까지 드러냈다. 이러고서도 선거에 이기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30%에도 못미쳤다거나, 지방 일꾼을 뽑았다는 점에서 지나친 정치적 의미 부여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다. 특히 이번 재.보선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참여해 '미니 총선'으로까지 불렸다. 그 선거 결과에 담긴 민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여권이 앞장서 선거의 의미를 깎아내려서는 안된다. 청와대가 "공천에 관여하지 않았으니 우리와 무관하다"고 시치미떼는 것도 곤란하다. 혹시라도 여권이 지역감정의 탓으로 돌리거나 "젊은층의 저조한 투표율 때문에 졌다"며 불복하려 한다면 그만큼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진다. 국민의 고통도 깊어질 것이다.

여권은 4.15 승리에 도취돼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았는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재.보선 민심을 겸허하게 살펴 발상과 자세를 새로 가다듬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