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못믿겠다' 금융기관들 대농 부도 사태후 신용도 점검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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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진로에 이어 대농에도 부도방지협약이 적용되자 은행.종금사등 각 금융기관이 거래기업들의 신용도를 전면 재점검하고 나섰다.

이 결과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거래기업별 여신한도를 재조정할 계획이므로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진로및 대농에 부도방지협약이 발동되자 대부분의 은행.종금사들이 재벌의 신용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재계 순위와 관계없이 신용리스크를 재분석해 여신한도를 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작업의 주요 대상은 부도방지협약의 적용범위인 51대 그룹및 부도루머가 돌고 있는 중견기업이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부 은행의 경우 김현철(金賢哲)씨 사건과 관련된 기업에 대해 기업이미지가 나빠져 전체적인 신용도도 낮아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미 합의된 거래를 수사결과발표 이후로 미루기도 했다.

S은행 여신담당자는“거래기업들중 나쁜 소문이 도는 곳을 먼저 뜯어보고 있다”며“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담보를 준다고 해도 신규대출을 해주기가 무척 망설여진다”고 말했다.일부 종금사들은 순위가 처지는 그룹및 중견기업에 대한 신규여신을 중단하고 이를 상위 5대그룹으로 돌렸다.부도방지협약이 적용돼 빌려준 돈이 묶이느니 금리를 다소 싸게 주더라도 믿을만한 5대그룹에 빌려주자는 것이다.

D종금 관계자는“5대 재벌의 기업어음(CP) 발행금리가 지난주 연13%에서 닷새만에 0.5%포인트나 낮아졌다”며“기업을 골라가며 거래하려는 분위기 때문에 기업의 자금사정은 신용에 따라 더욱 양극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신용이 좋은 상위그룹은 돈을 수월하게 마련하고 있는 반면 하위그룹및 중견기업은 자금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H시멘트 자금부간부는“부도방지협약이 생긴후 거래은행들이 부쩍 방어적으로 나와 회사에 문제가 없는데도 돈 구하기가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계에서는 부도방지협약이 2금융권의 무분별한 채권회수로부터 기업의 도산을 막아보자는 취지와 달리 채권회수를 더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H종금 관계자는“신용조사는 매일같이 해왔지만 협약발동 이후에는 객관적 근거보다 소문이나 선입견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며 “상위재벌에 자금을 몰아준다는 결론을 먼저 내놓고 작업에 들어간 곳도 있다”고 말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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