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얌전히 차를 모는 '티코'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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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티코.우리나라에서 국민차로 보급된 가장 값이 싸고 귀엽고 조그마한 자동차다.초등학교 6학년때 나는 친구들 5명과 함께 담임선생님이 자랑하던 빨간색 티코를 들어올리곤 했다.그때 나와 친구들은 차를 들 수 있다는 뿌듯함에 크게 웃곤 했다.

그러나 지금 고등학생인 나는 티코를 보거나 티코에 대한 우스운 이야기를 들으면 쓴 웃음밖에 지을 수 없다.우리집 자가용이 바로 티코이기 때문이다.아버지는 A레미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레미콘 회사에 근무하는 사원이 티코를 끌고 다니다니.참 아이로닉한 이야기다.아버지도 몇년전에 엑셀 자가용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여러가지 일로 집도 이사하고 차도 모두 팔았다.그리고 얼마 안돼 아버지는 티코를 새로 장만했다.내가 아버지의 티코차를 탈 기회가 자주 있는 건 아니었다.아니 기회가 별로 없었던게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에 일부러 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아버지는 학교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말했다.요즘 버스전용차로제라서 버스가 훨씬 빠르다면서.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버스가 텅빈 도로를 씽씽 달려나갈 때 승용차.택시들은 교통체증으로 답답한 도로를 느릿느릿 기어가야 했기 때문이다.어쨌든 그날 나는 학교에 지각을 해서 담임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받았다.

스쿠프를 끌고 다니는 큰형도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한다.“아버지,나 같으면 티코를 타느니 차라리 차를 안타요.”몇년전에 레미콘차를 운전하던 아버지와 지금 티코를 운전하시는 아버지를 비교해 보면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아버지가 1백㎞ 이상 속도로 운전하는 것을 나는 최근 본 적이 없다.추월하기.끼어들기 등은 모두 잊으신 것같다.

김상민〈구리시교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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