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분노의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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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리저 6단 ●·저우루이양 5단

 제4보(36∼51)=리저 6단의 행마에 어딘지 분노의 기색이 서려 있다. 우상의 현실을 인정하기 힘든 탓에 수마다 날카롭게 저항의 이미지를 토해낸다. 36으로 따냈지만 이 백은 꽃놀이패. 당초 구상은 이곳을 죽이더라도 쇠뼈다귀 3년 우려먹는다는 계산이었지만 백△ 한 수 벌어들인 것 말고는 더 이상 우려낼 것도 없다.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까 못 둘 것은 없지만 상대가 꽃놀이패를 믿고 37로 붕붕 날아다니자 뭔가 맛이 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37과 43. 저우루이양 5단이 급소를 툭툭 치며 백을 압박하고 있다. 검은 얼굴에 두툼한 몸집이 마치 작은 곰 같은 인상인데 바둑은 참 영리하게 둔다. 흑은 A의 절단을 보고 있지만 결정적 순간이 아니면 끊지 않을 것이다. 고수는 상대가 공배를 이어가게 만들지 여간해선 끊지 않는다. ‘참고도1’처럼 끊어봐야 B와 C의 선수를 보며 2로 밭전자를 가르고 나오면 공격이 쉽지 않다. 잡지 못한다면 흑1은 공배가 된다.

46은 폭발한 수.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울분이 느껴진다. ‘참고도2’ 백1에 두면 계속 패가 된다. 괴롭지만 그렇게 견딜 수도 있는 장면인데 리저는 46으로 가르고 나왔고 귀는 47의 한 수로 사망했다. 리저의 의지는 명백하다.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 50부터의 공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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