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반전현상 왜 일어나나 - 일본 무역 흑자 줄이기 예방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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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불과 열흘새 달러당 1백27엔에서 1백17엔대로 올랐다.엔화 환율의 추이는 우리 경제,특히 수출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동안 엔저에 따른 가격 경쟁력 상실로 곤욕을 치르던 수출기업들은 일단 엔고로의 반전(反轉)을 반기며 향후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최근 이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엔고의 배경과 전망을 알아본다. 편집자

최근의 엔고는 다시 늘기 시작한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일본 금융당국의 예방주사 성격이 강하다.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8일의 대장성 사카기바라 에이지(原英治)국제금융국장의 발언이었다.'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그는 국회에서“엔시세가 1백3엔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답변했다.여기에 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대장상과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관방장관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첫 방아쇠는 미국이 당겼다.지난달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루빈 재무장관은 잇따라 일본의 정책 전환을 강력히 요구했다.미국은 일본의 급속한 대미 무역흑자 확대에 우려를 표시하고 일본의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회복을 강력히 요청했다.

하지만 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게 일본의 입장이다.일본은 지난 4년간 불황 타개를 위해 60조엔에 이르는 재정투자를 단행,현재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대비 4.8%에 이르는 상황.따라서 재정개혁이 최우선과제로 대두된 마당에 소비세율 인상 백지화와 재정투자 확대를 골자로 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내수확대 대신 일찌감치 엔고 유도를 통해 무역수지 흑자 확대에 제동을 건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이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클린턴 정부의 입장을 살피고 통상마찰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엔고의 또하나의 배경은 일본경제가 살아나면서 일본 시중은행의 우대금리가 2.5%에서 0.6~0.7%포인트 오르는등 미.일간 장기금리차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또한 일본은 4월말 현재 2천1백99억달러의 외화를 보유해 미국이 거부하지 않는한 언제든지 외환시장에 개입,엔고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일본내에서는 대체로 달러당 1백15엔대가 1차목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미쓰즈카 대장상은 엔고가 1백18엔대에 이른 12일“엔강세는 곧 진정될 것”이라며 엔고 분위기에 제동을 거는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도쿄=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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