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트피플 시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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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주민들의 탈북(脫北)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탈출자의 성분이 전반적인 사회계층으로 확산,가족단위의 집단탈출 등 전에는 드물던 현상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탈출경로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12일 서해에서 귀순한 안선국.김원형씨 두 가족 14명처럼 선박을 이용한 해상탈출도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두 가족의 탈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북한에서 직접 선박편으로 남하한 첫번째 사례라는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그보다는 해상루트라는 새로운 경로가 갖는 의미에 더 주목해야 한다.지금까지 휴전선을 넘거나 제3국을 경유한 북한 탈출은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긴 했으나 상당한 한계와 제약이 따랐다.

그러나 安씨와 李씨 두 가족의 해상탈출은 경우가 다르다.한때 베트남의 예에서 보았지만 대량탈출을 의미하는'보트피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물론 이번 경우를 두고 당장 보트피플이 늘어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그러나 지금까지 관계당국은 북한의 해상통제능력에 비추어 선박을 이용한 북한 직접 탈출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왔다.

그런 면에서 두 가족의 탈출성공은 앞으로도 선박을 이용한 탈출이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특히 북한의 가중되는 식량난으로 체제가 이완되고 주민에 대한 통제가 약해지면서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탈북자정책은 이같은 대량탈북사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올 7월부터 발효되는'북한탈출주민 보호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은 귀순동포가 점진적으로 수백명단위로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마련된 법이다.

그러나 이번 두 가족의 탈출은 대량탈출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한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다.정부는 급변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이고 조직적인 대비책을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그리고 정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닌만큼 적십자사 등 종교.사회단체를 비롯,민간의 자원봉사를 활용하는 방법도 미리 연구해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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