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신뢰회복 까마득한 한국금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강경식(姜慶植)부총리와 주요 은행장들이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총회 참가를 위해 대거 일본에 왔다.은행장들은 도쿄(東京)에도 들러 주요 거래선과 접촉할 예정이다.형편없이 추락한 한국금융의 국제적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그러나 이런 대규모 나들이와 설명회로 한국 금융의 신뢰가 다시 높아질까.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부실문제로 본점 건물까지 판 일본채권은행.자구노력과 함께 대장성도 일본 대형은행과의'짝 맺어주기'에 발벗고 나섰지만 주가(株價)는 끝없이 떨어졌다.마지막으로 던진 승부수가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은행과의 합작.대장성은 반대했다.그러나“노랑머리 코쟁이가 은행장으로 와도 할 수 없다”고 대장성이 한발 물러서면서 이 은행 주가는 급등했다.외국인 투자가들은“일본판 빅뱅(금융개혁)의 현실감을 느끼게 한 첫 조치”라고 호감을 표시했다.총회꾼 스캔들로 주가가 35%나 폭락했던 노무라(野村)증권.노무라는 사장 이하 전무.상무등 16명의 핵심 임원들을 모두 잘라내는 극약처방을 내린 뒤에야 주가가 제자리를 찾았다.외국인 투자가들이 돌아온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의 평가는 이처럼 냉혹하다.땜질로 봉합에 급급한 시장은 철저히 외면한다.오히려 부실의 책임을 철저히 묻는데서 더 큰 안정감을 찾는 게 지금의 국제금융시장이다.

일본도 값비싼 수업료를 치러가며 이를 배우고 있다.불량채권을 솔직히 공개하고 부실금융기관을 더많이 도태시킬수록 일본금융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실 도쿄금융가에서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것은 코리안 프리미엄(부실한 한국금융기관에 대해 매기는 가산금리)이 아니라 지금까지 미동도 않고 버티는 한국의 은행들이다.

국제금융시장 관계자들이 뻔하게 물어올 질문에 姜부총리 일행이 어떤 대답을 준비했는지 더욱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2년전 4천4백억원의 손실로 영국 최고의 베어링은행이 문을 닫았다.8천억원의 손실을 입은 일본 다이와(大和)은행도 합병당할 뻔했던게 불과 1년전이다.한보사건으로 무려 5조원 이상이 물린 한국의 은행들은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되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