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협 개혁, 중앙회의 기득권 더 포기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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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02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조직’.

농협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나오는 지적이다. 농협이 본업(유통·판매사업)보다 부업(금융업)에 치중하다 보니 본말이 전도된 기형 조직이 됐다는 것이다. 농협의 설립 목적은 ‘농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이는 농협법 제1조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농협은 농민이 아닌, 임직원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됐다. 농민은 갈수록 늘어나는 부채로 시름에 빠져 있는데 농협은 돈장사로 매년 엄청난 흑자를 내 왔다. 농업과는 무관한 각종 이권사업에 진출해 몸집을 불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역대 농협중앙회장 세 명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농협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온 것은 당연하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이 번 돈을 농민에게 돌려줘라. 농협이 돈 벌어 갖고 사고나 치고 있다”고 호되게 질책하면서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거액의 로비 스캔들이 드러난 게 계기다.

이 대통령의 질책 덕분에 지난주 농협 개혁 방안이 잇따라 나왔다. 7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자체 개혁안을 발표한 데 이어 9일엔 농림수산식품부와 학계·농업계로 구성된 농협개혁위원회가 개혁안을 내놨다. 골자는 ▶농협 회장의 권한 축소 ▶일선 조합의 역량 강화 ▶농축산물 판매·유통 사업(경제사업) 활성화다. 이번 개혁안은 역대 정부가 내놓은 것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예측 가능하게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농림부는 개혁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농협이 진정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재탄생하기엔 이번 개혁안만으론 부족하다. 중앙SUNDAY는 지난해 12월 14일자 ‘농협 혁파 전문가 제언’을 시작으로 릴레이 인터뷰를 게재해 왔다. 농협을 바로잡아야 한국 농업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인터뷰에서도 확인됐듯 농협 개혁은 중앙회의 기득권 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중앙회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지역조합을 통폐합해 경쟁력을 갖게 해야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지역조합과 경합하는 농협의 157개 시·군 지부를 해당 지역조합에 통합시키는 게 필요하다. 또 21개 농협 자회사와 5개 노조 문제도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농협 직원의 권익 보호를 앞세우다 보면 농민에게 돌아갈 몫이 작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농민이 농축산물을 제때 제값 받고 팔 수 있도록 하는 농협의 경제사업도 더 강화해야 한다. 특히 개방 시대를 맞아 한국 농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도록 품목조합을 육성하는 게 시급하다. 미국의 오렌지 영농조합인 썬키스트나 뉴질랜드의 키위 영농조합인 제스프리 같은 세계적 명성의 조합이 한국에서도 탄생할 수 있도록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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