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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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우풍이'힌두교와 에로티시즘'을 읽다 말고 스르르 졸음이 몰려왔다.감기약 기운이 퍼지는 모양이었다.점점 흐려지는 시야에 까만 관이 졸아들고 있었다.

입단식을 위해 갖다 둔 관이 용도대로 쓰인 것은 옥정의 경우외에는 문수의 경우가 고작이었다.그것도 문수가 관에 누워 자다 말고 밤중에 가위에 눌려 귀신 어쩌고 헛소리를 하면서 도망감으로써 문수의 입단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동네 쌀가게 오토바이를 훔치다가 들켜 학교에도 못가고 가출을 한 문수는 용태의 소개로 니키 마우마우단원이 되기 위해 비트를 찾아왔는데 그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이었다.

그 이후로 니키 마우마우단원들은 정말 관에 옥정 아버지의 귀신이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용태가 시험삼아 하룻밤 관 속에서 자보았는데,좀 어지러운 꿈만 꿨을 뿐 귀신에 눌리지는 않았다.하지만 용태보다 마음이 약한 우풍 자기나 대명이 관 속에 자면 문수처럼 귀신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그래서 그 관은 담력을 시험하는 면에서는 더욱 효과적이 된 셈이었다.

우풍이 깜박 잠이 들었는가 싶었을 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단원들이 동쪽 비트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나 하고 우풍이 부스스 눈을 뜨려는 순간,“관이잖아! 이거 귀신 나오게 생겼구먼.야,너,왜 여기 있는 거야?” 하는 음성과 함께 누가 우풍의 멱살을 낚아채는 느낌을 받았다.우풍은 목이 답답하여 꽥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하지만 우풍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 전에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홱 일으킴을 당하고 말았다.

“누구야?” 우풍은 그제야 단원들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침입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형사들이다.경찰서로 가줘야겠어.” 사복을 입은 두 사람과 순경 정복 차림을 한 한 사람이 우풍을 둘러서 있었다.순경이 우풍을 끌고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형사들은 무슨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는지 비트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몸매는 홀쭉하지만 키가 큰 형사 한 사람이'힌두교와 에로티시즘'이라는 책을 집어들어 몇 페이지 넘겨보다 말고,“너희들,여자 남자 혼숙하는 거야!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하고 물었다.

“다른 애들이라니요? 나 혼자예요.” 우풍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능갈을 쳤다.

“여기 그릇들 하고 이불,옷가지,가방들만 해도 다섯 명은 넘겠다.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다른 애들이 여기 묵었다가 갔겠죠.난 어제부터 혼자 여기에 와있는 거예요.그게 무슨 죄라도 되나요? 경찰서로 끌고가게.대한민국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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