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지원 말뿐 韓.黑갈등 여전 - 한인사회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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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LA폭동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미국사회의 용량이 위기가 닥쳤을 때만 반응할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다.”버클리대 사회변동학 연구소장 트로이 더스터 교수가 작성한'LA 5년 이후'의 평가다.

사망 58명,부상 2천3백83명,방화 및 약탈 피해 5백60개소에 재산손실 4억달러. 그러나 이러한 물적 피해 외에 미국사회에 지울 수 없는'골'을 남겼던 LA폭동이 스러진지 5년 뒤인 현재 이 갈등은 얼마나 풀렸으며 미국사회의 개선노력은 무엇이 있었을까. 폭동이 일어나자 당시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후보 클린턴등 많은 정치.흑인 지도자들은 이 사태가“인종갈등 및 이너 시티(Inner City.대도시 중심부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모순들이 어우러져 표출된 미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종편견.빈곤.실업.범죄등 폭동의 불씨가 됐던 요소들을 해소해 나갈 것임을 역설했다.

피터 위버로스 당시 피해복구위원장과 정치인들이 지역사회개발은행이나 민간 대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 도심을 개발하고 새로운 직업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LA재건위원회(RLA)는“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다.RLA의 린더 그리에고 위원장은“폭동 이후 LA경제가 그나마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은 외부의 지원 때문이 아니라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한 이민사회의 자생력 덕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꼽혔던 인종갈등,좀더 구체적으로 흑.백간 또는 한.흑간 갈등의 해결도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폭동이 거셌던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28년째 이발소를 운영해 오고 있는 흑인 굿 프레드(48)는“폭동 이후 한.흑간에는 개선된 것도 더 악화된 것도 없다”고 말한다.

폭동에서'가해자'역할을 했던 흑인들은 더욱 곤궁해지고 있다.폭동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다운타운이나 흑인거주지역 주변을 벗어나 버뱅크나 글렌데일.오렌지카운티로 향했다.기업활동의 중심지도 다운타운인 윌셔가에서 LA 서부지역.세인트 페르난도 밸리.머리너 델레이 등지로 옮겨졌다.중심가 상권이 쇠퇴하면서 흑인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2주전 있었던 LA시장 선거는 이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LA 전체인구의 12%를 차지하는 흑인들은'살기 힘든 LA'를 통박한 민주당의 톰 에이든 후보를 밀었으나 좌절됐다.흑인들의 절망감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LA폭동과 같은'다인종 폭동사건'이 다시 벌어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피해자였던 한인교포들은 거의 폭동지역을 떠나지 않고 있다.그러나 이는 안 떠나는 게 아니라 못 떠나는 것이다.

폭동과 함께 불어닥친 불경기,점포값의 폭락,보수회귀로 인한 복지혜택의 축소등 겹치는 악재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주할 마음을 먹지 못한 채'울며겨자먹기'식으로 눌러앉아 있는 실정이다.

교포업소들의 재기도 따지고 보면 각개약진의 수준이다.교민사회 전체나 미국정부와의 연계등 대국적 측면에서의 대책마련 또는 추진의 예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LA폭동 이후의 대책이 사실상 등한시돼 온 것은 그러나 미국정부나 백인의 무성의라기보다 미국사회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인종학자인 로널드 다카키는'다른 해안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유색의 제복(Colored Uniform)'이란 표현을 쓰고있다.백인들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동양인.흑인등 유색인종은 아무리 미국화한다 하더라도 피부색이라는 눈에 띄는 제복을 입고 있는 한 이방인 취급을 받게 마련이어서 인종갈등은 숙명적이라는 얘기다. [LA=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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