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傳 어떻게 쓰여지고 읽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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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 작품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은 당시 민중들 사이에 중종 반정을 주도한 신흥 사림파에 대한 광범위한 반감이 조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한글본이 유행한 것은 이같은 민중들의 정서에 적합한 글의 형식을 취한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중종때 승정원 승지를 지낸 이문건(李文楗)일기의 낱장마다 접혀진 속면에 필사되어 있다는 것. 전통적인 한지 편책에 따라 접혀진 안쪽에 기록된 이 소설은 뜯지 않고는 제대로 읽을 수 없도록 돼있다.

이는 당시 필화사건등으로 조성된 살벌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몰래 기록해 읽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공찬전'이 아니라'설공찬이'라는 제목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며 주인공 이름에 우리식 인칭접미사'이'를 붙인 것으로 추정.'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이 소설은 전국 각지에 여러개의 필사본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이번에 발견된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 이복규 교수의 추정이다.또한 이 소설이 실려있던'묵재일기(默齋日記)'또한 희귀한 생활일기라는 점에서 문학사상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소설을 찾아낸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실(실장 최근영)은 전국 향토사 연구자 3백여명을 사료조사위원으로 위촉,전국적으로 산재한 고문헌을 수집.정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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