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에 박상범 경호실장, 김현철씨에게 나중에 청문회 서게 된다고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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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현철(金賢哲)씨의 국정개입이 한창이던 94년 박상범(朴相範)대통령경호실장은 현철씨에게“나중에 청문회에 서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에 앞선 93년 가을 박관용(朴寬用)청와대비서실장은 현철씨 국정관여 금지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거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두 핵심은 94년 12월 성수대교 붕괴로 인한 개각때 같이 물러났는데 특히 박상범실장은 현철씨와 그 주변인물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교체의 결정적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관용실장은 현철씨와 관련된 잡음을 거론한 이래 현철씨 본인과 그가 청와대.안기부등에 박아둔 인물들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했다.

여권 고위소식통은 24일“박상범실장은 먼저 94년 봄 金대통령에게 현철씨 국정개입을 둘러싼 시중의 비판여론을 전달했으며,7월께는 현철씨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고 소개했다.

박상범실장은 현철씨.김기섭(金己燮)안기부기조실장.장학로(張學魯)청와대부속실장등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자리에서 현철씨와 언쟁을 했다는 것. 朴실장이 현철씨에게“지금 여론이 어떤줄 아느냐.그런 식으로 하다간 나중에 청문회에 서게된다.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이로인해 언쟁이 이어졌다.

朴실장은 특히 현철씨가 청와대에 심어둔 젊은 비서관들의 비리와 무리수를 지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朴실장은 현철씨 그룹의 반격으로 관직에서 완전히 밀려날 뻔 했으나 金대통령 주변인사들이“경호실장 출신을 그렇게 해선 곤란하다”고 거들어 한직(평통사무총장)에나마 옮겨갈 수 있었다. 이에 앞서 박관용비서실장은 현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안되는 93년 9월 金대통령에게“현철씨의 국정개입 문제가 앞으로 큰 정치적 부담이 될 것입니다.지금 손을 떼게해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고 정통한 소식통이 전했다.

현철씨가 실장실을 직접 방문하는등 청와대 안팎을 휘젓고 다닐 때였다.

바로 다음날 아침 朴실장은 현철씨의 전화를 받았다.현철씨는“아버지(金대통령)에게'이상한'얘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대들었다고 한다.

朴실장은 훗날 사석에서“그때 참 어이가 없더라.젊은 친구지만 대통령의 아들인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거짓말은 못하겠고….'나한테 직접 그런 일을 물을게 아니라 직접 여쭤보라'는 말로 통화를 끊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며칠후 현철씨와 친한 K비서관(현재 신한국당의원)이 현철씨와 화해하라고 건의했으나 朴실장은 “물러나면 물러났지 어린 친구에게 사과할 수는 없다”고 거부했다는 것.朴실장은 현철씨 문제를 고민하다 두번정도 사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朴실장은 지난 16일 신한국당후원회 운영위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과거에는 안기부가 정보.예산을 틀어쥐고 국정을 움직였는데 문민정부 들어 그렇지 않아 국정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을 메우려 현철씨가 개입한 측면도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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