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끝나지 않은 이-이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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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강전>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제16보(165∼177)=그동안 상처가 누적된 탓일까. 좋은 수를 찾고 싶지만 밀려오는 파도 앞엔 백약이 무효다. 제국이든 바둑 한판이든 무너지는 모습은 마찬가지다.

이세돌 9단이 165를 선수한 뒤 167로 단수하자 중앙이 갑자기 까맣게 변하며 공격에 나섰던 백△ 두 점이 일엽편주처럼 가물가물해진다. 백의 마지막 기대였던 두 점이 잡히며 공격받던 대마가 10집이 넘는 집을 짓고 살아버렸다.

이창호 9단은 168, 170으로 흑▲두 점을 끊어 대응했지만 타이밍이 한 발 늦었다. 이제 흑은 이 두 점을 버려도 이긴다. 계산서가 너무 뻔해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다(이처럼 쉬운 계산서를 상대에게 제공했다는 것 자체가 전략 미스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백은 중앙 습격에 나서기 전에 168, 170의 절단을 결행해야 옳았다. 이때는 흑도 두 점을 그냥 버릴 수 없었기에 바둑판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쉽다. 변화도 끝났다. 전략의 대가로 통해왔고, 오랜 세월 신산(神算)이라 불려온 이창호 9단에겐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177로 다져 흑의 승리가 결정됐다. 이창호 9단은 10여 수 더 두다가 흑이 A로 끝내기하자 대차를 확인하고 돌을 던졌다. 올해 이세돌 9단에게 3연승한 뒤 첫 패배. 응씨배에선 이기고 삼성화재배에선 졌다. 2009년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어찌 될까.

이창호 9단이 올해 장가를 든다면 더욱 좋은 승부가 펼쳐질 거라는 뜬금없는 얘기도 들려온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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