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전두환.노태우씨 사면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 국민감정 무시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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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2.12 군사반란, 5.18 내란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적어도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주.객관적인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객관적으로는 먼저 대법원의 판결 정신에 따른 과거청산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5.18 등과 5,6공 기간중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이 아직도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며 5.18 광주와 그 후 성립된 5공정권 아래서 부도덕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등 인권침해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적절한 배상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다.또한 5,6공에서 만들어진 각종 악법과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제도.관행이 고쳐졌다고 인정할 국민도 거의 없을 것이다.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작업이 모두 이루어지거나 적어도 그 일정이 가시화되어야만 그들에 대한 사면이 우리사회 민주화의 후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주관적으로는 관련 피고인들이 역사와 정의의 심판에 진심으로 승복하고 참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그러나 국민들은 그들이 그러한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것을 접해 보지 못했다.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그들의 사면에 대한 공감대가 그들에 의해 인권 침해를 받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비롯한 전 국민의 합의 위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현 정부는 출범 초기 5,6공 당시의 비리 사범에 대해 숙정운동을 전개,적지 않은 사람을 기소해 유죄판결을 받게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모두 사면함으로써 그러한 치적을 무(無)로 돌린 바 있다.이러한 사태는 국민들에게 많은 배신감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엄중한 재판절차를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과정의 일부로 희화화시켰고,현 정부 스스로 비리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이번에도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한다면 다시 한번 사법부의 권한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게 된다.

연내 사면은 결코 국민화합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사면이 국민화합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그들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이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자 할 때만 가능하다.그러나 지금은 피해자들 대다수가 그들의 사면에 대해 찬성하고 있지 않다.만일 연내 사면이 행해진다면 全.盧 처벌에 찬성했던 여론은 현 정부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고 이는 국민을 화합시키기는커녕 국론을 분열시킬 것이다.

이번의 대법원 확정판결로 우리는 우리역사상 처음으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귀중한 기회를 가졌다.또 잘못된 방법으로 정권을 잡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사적 책임과 함께 형사적 처벌을 받는다는 당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와 같은 확정판결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사면은 오히려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은 일시적 고통을 당할지라도 최종적으로 단죄되지는 않는다는 불행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불행했던 과거를 올바로 청산함으로써 우리사회가 민주적인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불필요한 사면 논의로 국론이 분열되고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어도 자신의 임기 중에는 사면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밝혀야 할 것이다. 백승헌〈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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