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로버트 김을 더 이상 외롭게 하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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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이 어제부터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의 강릉 앞바다 침투사건 당시 미 해군의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에 넘겨준 혐의로 미 연방교도소에서 7년여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가 오는 7월 27일 만기출소를 앞두고 교도소 대신 집에서 생활하는 가택연금 상태로 전환하게 됐다니 한편으론 다행스럽지만 완전 자유의 몸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안타깝다.

그가 조국을 사랑한 대가로 치른 희생은 컸지만, 조국은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로버트 김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순간부터 한국 정부는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동생 집을 팔아 마련한 변호사 비용마저 떨어지고, 본인이 감옥에서 법전을 공부해 가며 감형 신청과 형량 재심청구를 혼자 진행하고, 부인은 한인교회에서 허드렛일을 해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동안 우리 정부는 나 몰라라 했다.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나서기 거북했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됐지만 후회는 없다"던 로버트 김의 조국애는 짝사랑에 불과했단 말인가. 조국 이스라엘에 1000여건의 비밀을 유출했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 유대인에 대해 이스라엘 총리까지 나서서 미국에 석방을 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조국에 헌신한 사람을 외면한다면 그 나라는 이미 국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그가 "나는 조국이 버린 미운 오리새끼냐"고 절규했겠는가. 그의 석방과 후원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언론도 함께 부끄러워 할 일이다.

그는 앞으로도 3년간 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호관찰기간을 보내야 한다. 그는 파산선고까지 받아 당장 생활도 어려운 상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로버트 김을 도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본다. 후원회가 곧 길거리 모금을 시작한다고 하니 보다 많은 국민의 동참이 있기를 기대한다. 또 그가 조국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면 그렇게 조치하는 게 조금이나마 조국이 그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