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신도림 역에서 청량리 행 지하철로 갈아탄 용태 일행은 청량리 역까지 그대로 서서 갔다.옥정은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싱긋싱긋 웃어가며 차창 밖 풍경들을 구경하느라고 머리를 이리 쭈뼛 저리 쭈뼛 하였다.

청량리 역 광장으로 옥정을 데리고 나온 용태와 도철은 언제쯤 옥정을 버리고 도망을 칠까 기회를 엿보았다.도철이 흘끗 시계탑을 올려다 보니 시침과 분침이 다섯시 근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오뎅 먹고 싶다.”

옥정이 근처 포장마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국을 보더니 광장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를 질렀다.

“그래,그래 알았어.”

용태가 달려가 오뎅 한 꼬챙이를 사가지고 왔다.

“오뎅은 먹고 꼬챙이는 돌려줘야 돼.빨리 먹어.”

옥정이 오뎅 꼬챙이를 받아 한입 베어물고 나서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왜 또?이번에는 뭐야?”

“나,화장실 가고 싶다.쉬 하고 끙 하고 싶다.”

“저쪽으로 가 봐.저기 화장실 표시 있잖아.”

용태가 역사(驛舍)쪽을 가리켰다.옥정이 오뎅 꼬챙이를 손에 든 채 화장실을 찾아갔다.오뎅 꼬챙이를 손에 들고 대변과 소변을 볼 옥정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철이 비식 웃었다.그러다가 용태와 눈길이 탁 부딪쳤다.이때다,하는 생각이 영감

처럼 들었다.

옥정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서 용태와 도철은 냅다 지하도 계단을 달려내려가 무턱대고 아무 지하철이나 탔다.

“이거 의정부로 가는 거잖아.반대 방향으로 타야 하는데.”

용태가 숨을 몰아쉬며 도철을 쳐다보았다.

“다음 정거장에서 바꿔 타지 뭐.”

도철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게 잘 되겠지?옥정이 인신매매단 같은 데서 잡아가지는 않겠지?”

“미친 여자 잡아가서 뭐 하게.”

도철이 그렇게 대답해 놓고,'고백'이라는 어떤 책 제목을 떠올렸다.지난 겨울방학 때 우풍이 세상에서 가장 처절하게 음란한 책이라면서 빌려준 책이 바로 김신용의'고백'이었다.처절하게 음란한 책이라니.우풍의 그 추천사에는 문제작이라는

어감이 묻어있기도 하였다.

도철은 이틀밤을 새우면서 그 책을 읽어치웠다.정말 처절하기 그지없는 음란한 책이었고,음란하기 그지없는 처절한 책이었다.처절한 음란은 이미 음란이 아니었다.그 책에서 미친 여자는 부랑자들에게 열려 있는 거대한 음문(陰門)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