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수로 분담금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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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북(對北)경수로지원에 관한 주요 협상들이 거의 마무리돼 올 상반기로 예상되던 공사착공이 이번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내부문제로 제동이 걸리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착공에 필요한 예산을 한푼도 마련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KEDO의 중심국가인 한.미.일 3국중 어느 나라도 당장 필요한 재정을 미리 부담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경수로가 들어설 북한의 신포(新浦)에는 이미 지난 3월부터 7차 부지조사단이 지질탐사 등 작업을 진행중이고 8일에는 한전(韓電)등 시공업체 관계자를 포함한 대규모 실무협의단이 처음 뱃길로 파견됐다.부지공사 착공준비는 이로써 거의 마무리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정부는 우리정부에 대해 4천만,5천만달러에 이르는 예비사업비를 우선 부담해 조기착공토록 권유하고 있다.어차피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고,분담금이 확정된 뒤 정산할 터이니 그 정도를 미리 부담하는건 당연하다

는 얘기다.금액으로만 따진다면 6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경수로비용에 비추어 예비사업비를 미리 낸다고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그러나 그러자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전체 경수로비용이 얼마가 될지,우리가 분담할 몫은 얼마나 될지의 정도는 알고 돈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미.일 3국간에는 아직 그런 문제를 두고 논의한 일이 한번도 없다.서로가 분담할 몫을 저울질할 뿐이다.그저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일본은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미국은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분담과 관련된 이야기의 전부다.그러나 이제는 그런 탐색이나 덜 부담하려는 줄다리기 시기는 지났다.

경수로비용에 관한한 한푼 안 내려는 미국은 예비사업비 등을 모두 부담하는데서부터 시작해 우리의 과중한 부담을 기정사실화할 속셈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경수로 사업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이득을 챙기면 누구나 그만큼 비용은 부담해야 한다

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분담금협상을 서둘러 서로의 책임과 한계를 분명히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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