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대기업인 곳은 없다 중소기업서 성공신화 만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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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취업난이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도 입사시험에 합격해 놓고 바로 회사를 떠나는 ‘신입사원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은 붙고 보자는 심리로 지원하지만 막상 ‘혹시 더 좋은 데가 없을까’ ‘내가 고작 여기 오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하는 생각에 쉽사리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직장을 자아실현을 위한 장(場)이 아닌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의식 때문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이나 성취욕보다는 경제적 보상을 많이 해 주는 곳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경제적인 보상을 앞세우다 보면 스스로에게나 기업에 최고의 성과를 가져다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우선된다면 어느 조직에 있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힘들다. 물론 대기업에 입사하면 좋다. 상대적으로 근무환경도 좋고 대우가 낫다. 출발점이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출발점이 좋아도 결코 실력과 경험을 넘어설 수는 없다. 손발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두뇌로서의 경험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동기들과 비교해 봐도 좋을 것이다.

처음부터 대기업인 곳은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작은 상점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대기업으로 성공했으며, 그 성장 배경에는 돈이나 편한 곳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꿈과 열정을 발산하고자 노력한 젊은 인재들이 있었다. 나의 대학(서울대 상대) 동기들 중에는 40년 전 요즘 잣대로 볼 때 중견기업행을 선택한 이들이 많았다. 이제 와서 보니 320명 중 180명이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우리 속담에 ‘소꼬리보다는 닭 머리가 낫다’는 말이 있다. 이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소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중견·중소기업에 들어가 닭 머리가 됐다. 조직은 작지만 대기업보다 맡는 일의 범위가 넓어 폭넓은 경험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중소기업이 좋으니 중소기업에 우선 취업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을 시도해 보고 결과가 여의치 않으면 유망한 중소기업에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 무조건 대기업만 고집해 취업 재수생이 되기보다는 중소기업에서 실력과 경험을 키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우리 세대가 그랬듯, 또 다른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겸 중앙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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