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헤일 봅 혜성의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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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헤일-봅 혜성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지구 가까운 하늘의 길을 지금 지나가고 있다.이 별로서는 4천2백년만에 다시 지구를 찾은 것이라고 한다.옛날 사람들은 혜성을 재앙의 별이라고 여겨 왔다.홍수.가뭄.전쟁 등을 일으켜 사람에

게 고통을 주고 심하면 숱한 목숨을 희생(犧牲)으로 받아 간다고 믿었다.옛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요즘 미국에는 헤일-봅 혜성의 뒤쪽에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고 타고 오는 우주 모선(母船)이 숨어 있다는 등,별의별 재앙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란(大亂)을 두고 차마 헤일-봅 혜성이 우리나라에 뿌린 재앙이라고 점성술사처럼 말하지는 말자.차라리 지금의 대란 자체가 하나의 혜성처럼 우리에게 온 것이다.

한보사태가 터지자 이석채(李錫采) 전 청와대경제수석에게 한보를 그대로 끌고가지 않고 왜 부도처분했느냐고 한 기자가 물었다.“부도를 낸 것이 아니라 부도가 난 것이었소.”나는 이 짧은 한마디가 한국의 1997년을 뭉뚱그려 스케치한

말로서 역사에 남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우리의 지금 대란도 누가 낸 것이 아니라 비(非)인격적인 역사 법칙에 따라 저절로 난 것이라고 보고 싶다.혜성이 천체운동의 법칙에 따라 우리에게 찾아 왔듯이.

공자(孔子)가 역경(易經)에서 밝힌 역사법칙은 궁(窮).변(變).통(通).구(久),이 네 국면으로 구성된다.막히면 변화하고(窮則變),변화하면 통하고(變則通),통하면 오래 간다(通則久)고 공자는 말했다.막힘이 어떻게 오는지는 역경에

굳이 쓰지 않았지만'오래 되면 막힌다(久則窮)'는 말을 넣음으로써 궁.변.통.구는 둥근 고리를 완성하여 역사의 반복 순환 모델을 이룬다.통.구는 물론이지만 궁까지도 치(治)다.그러나 변은 난(亂)이다.이렇게 역사에는 치와 난이 엇바뀌어 드는 것이다.

지금의 대란도 다름 아닌 변(變=변화)이다.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변화와 개혁'을 자신의 징표(徵表)로 삼아 왔다.그는 자신이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아이로니컬한 것은 그 자신이 하나의 극심한'궁'임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 역사의'막힘'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나는 한마디로 문화적 사대주의가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다.정치는 큰 것을 섬기는 것이 백성의 안보를 유지하는 방편일 수 있다.경제는 큰 것에 순종하는 것이 이익을 거두는 길일 수 있다

.그런데 문화적 사대주의란 생각이 없음을 말한다.고(故) 함석헌(咸錫憲)선생이'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을 때와 같은 뜻을 지닌 삶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생각 말이다.

문화적 사대주의의 반대 쪽에 나는 계몽주의(啓蒙主義)를 놓고자 한다.이성의 궁극적 검증 없이는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용맹스런 지혜가 계몽주의다.이에 비하여 문화적 사대주의는 이성의 검증 없는 무조건 남 따라가기 아니면 무

조건 남 반대하기에 빠지고 만다.주체성 없는 배타주의는 주체성 없는 영합주의와 본질에서는 똑 같다.생각을 따라 파당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끼리 끼리 인연에 따라 파당을 만들고 무상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인다.

우리나라의 지금 대란은 19세기 말에 시작되어 1백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마지막 큰 풍랑으로 보인다.이 변화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법칙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무엇이 생겨날지 모를 것이 많다.이 변화 속에는 작게는

내각제따위,크게는 남북통일이 준비되고 있을 수도 있다.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것도 있다.이 변화가 남한도,북한도 엄청난 경제적 시련의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그러나 이런 것은 크든 작든 겉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 대란을 통해 문화적 계몽주의로 접어들게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알맹이다.이 알맹이를 얻어 내기만 한다면 지금의 대란을 헤일-봅 혜성의 선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그다지 미신(迷信)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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