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옥 최부잣집,국가헌납 무효소송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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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광주천에서 사직공원으로 향하는 언덕길로 오르다 오른편 첫 골목길로 접어들면 고색창연한 한옥이 덩그렇게 서있다.

바로 이곳이 부근 주민이라면 모두 다 아는'최부잣집'(남구사동128).

3에 이르는 육중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6백50평이 넘는 집터에 1층만도 70평인 3층짜리 본채가 위풍당당하다.또 맞은 편에는 4칸짜리 아래채가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1930년대 손꼽히던 호남지주의 한 사람이었던 최상현(崔相鉉)씨가 10년에 걸쳐 지었다.

당시 유행했던 중국풍에 따라 본채를 3층으로 지으려고 중국에서 직접 나무를 가져와 5년동안이나 말리는 정성을 들였다.40년대 초까지만 해도 50여명의 식솔이 북적이던 이 집은 해방과 6.25전쟁,그리고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온갖 풍

상을 겪었다.오늘에 이르러서는 崔씨의 며느리 趙규희(80)씨와 趙씨의 두딸만이 집을 지키고 있다.

지금의 최부잣집은 더이상 부잣집이 아니다.40년대 1만5천섬 지기였던 崔씨 집안이 일본의 강점시기에 농지 일부를 일본인에게 강탈당한 것을 시작으로 해방후 농지개혁.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대부분의 소유토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을 둘러싸고 30년 넘게 계속된 송사 덕분에(?) 집 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

崔씨의 아들 정수(正洙)씨가 52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당시 15세였던 崔씨의 손자 윤성(允成.60)씨가 맡게 됐고 어린 윤성씨의 재산을 돌보던 孫모씨가 이 집을 60년대 초 국가에 헌납하면서 송사가 시작됐던 것이다

.

崔씨 집안은 이 헌납이 무효라며 64년 소송을 제기,이 문제는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그 결과 국가도,崔씨 집안도 이 집을 함부로 헐거나 고치지 못하는 상태다.

광주시가 한때 문화재로 지정하려고까지 했던'최부잣집'은 광주시에 몇채 남지 않은 전통가옥이지만 재판결과에 따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인 셈이다.

〈광주=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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