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내각제 개헌론 이렇게 본다 - 설득력 없는 개헌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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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이유로 내각제 개헌을 반대한다.

첫째,내각제로는 정치안정을 기하기 어렵다.내외정세가 급변하는 한국적 정치환경에서는 정치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5년의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라야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나갈 수 있고 그래야 나라의 중심이 선다.더구나 1인

지배의 전제정치체제를 가진 북한과 대결해야 하는 우리 실정에선 더욱 그러하다.수시로 바뀔 수 있는 내각으로는 정치안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둘째,각료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도 내각제보다 대통령제가 낫다.대통령은 전국민 중에서 식견과 안목,그리고 업무 추진력이 훌륭한 사람을 선택해 장관으로 임용할 수 있다.그리고 그 장관이 5년동안 계속해 장기 정책을 펴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그러나 내각제로는 각료의 전문성과 임기를 보장할 수 없다.의원중에서 각료를 임용하게 될 때,그리고 정당간의 타협으로 각료수를 안배하게 될 때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일할만한 장관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내각제의 경우 주요정책이 정치적 타협의 희생물이 될 위험성이 크다.정당의 정치의식 성숙도가 낮은 상황에서 국가 안위(安危)에 관련되는 정책을 정치적 타협에 맡겨서는 안된다.대통령제에서는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내각제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나 우리 현실에선 아직 도입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내각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이루어질 때 생각해야 한다.

우선 정당이 국민의 정치성향을 대표하는 안정된 조직으로 성장했을 때

내각제를 검토해 볼 수 있다.정당이 한 사람의 정치인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사당(私黨)으로 되어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내각제는 위험하다.

또 관료제가 안정되고 정치인이 관료의 기본업무에 관여하지 않는 관례가 정착될 때 내각제를 검토할 수 있다.내각이 바뀌어도 행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라의 기강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자율성이 높아져 정치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가 좁아졌을 때면 내각제도 무방하다.기업의 흥망도,은행대출도 정치의 간여로 결정되는 정치만능의 상황에선 내각제의 폐해가 엄청나게 증폭된다.

백보를 양보해 내각제를 검토한다 하더라도 이때 이런 식으로 논의하는 것은 안된다.대권주자들이 자기가 당선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나라의 기본 권력구조를 뜯어 고치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이 나라는 4천5백만명의 나라이지 몇 사람 정치인들의 것이 아니다.

'3金체제'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고 30년 묵은

시대착오적인'3金체제'구도를 더 연장하기 위해 내놓는 내각제 개헌안이라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이런 저의가 깔려 있는 내각제 논의에 대해서는

내각제가 아무리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은 거부할 것이다.

내각제 논의가 나온 것은 현임 대통령이 대통령제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거꾸로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통합 통치권한을 개인적으로 남용해 문제들을 일으켰기 때문이다.그러나 기수가 나쁘다고 말을 나무란다면 우스운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한가롭게 내각제 개헌 타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할 때다.

이상우 <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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