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보이, 몸짓으로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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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무대 위 검은 실루엣이 서서히 움직인다. 흐느적거리는 몸짓에 긴장감을 더하면 조명이 그만을 위해 존재하듯 빛을 발한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짧은 전자음 스타카토. 이를 신호로 주변의 정적은 이내 열광의 함성 속에 파묻히고 무대위의 비보이는 이윽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 전 세계 비보이들의 우상이 되겠다는 꿈에 산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춤과 음악,그리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무대뿐입니다.”도봉구 지역 고교생 8명이 팀을 이룬비보이 ‘비-크루(飛-Crew)’가 한껏 날아올라 그들의 날개 짓을 서울하늘에 수놓았다. 지난달 열린 ‘2008서울청소년교육미디어 축제’에서 댄스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 3년전 북서울 중학교 비보이 동아리로 만난 이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자신들을 다그친다. “아직 부모님들은 춤을 이해하려 하시지 않아요. 부모님들은 ‘공부해서 대학가라’고 하시지만 저희는 춤으로도 대학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고난도 비보이 기술 ‘토마스’가 장기인 이정서(도봉고 2년)군은 한때 춤을 포기했었다. 계속 춤만 추다보면 부모님 충고대로 굶어 죽을 것 같았단다.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지만 온통 춤만 생각해 왔던 이 군의 머리가 다시 공부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길가다 TV에 비보이가 나오더라고요. 마치 내가 그 무대에서 춤을 추는 듯한 착각에 빠졌어요. 그날로 다시 비보이가 됐죠.” 이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지망하고 있다.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힘이 되는 건 바로 ‘꿈’이다. 이호인(누원고 2년)군은 “대학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시간날 때마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다”며 “우린 전 세계 비보이들의 우상이 되겠다는 꿈이 있어 날마다 연습을 해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이라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연습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 학교 축제에 가장 초청하고 싶은 팀으로 꼽혀= 비-크루 멤버들은 지독한 연습벌레들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3년간 공연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창동수련관 무용실에서 연습했다. 이같은 연습은 곧바로 실력으로 이어져 각 학교 축제 시즌에 가장 초대하고 싶은 팀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기복(고대부고 2년)군은 비보이를 ‘제
2의 나’라고 표현한다.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잠재된 자신을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레 춤으로 나와요. 기쁨·슬픔·분노·서러움 등을 내 몸짓으로 표현하는 거죠. 심지어는 배고플 때 춤을 추면 그 배고픔이 춤으로 표현돼요.”이들의 1차 목표는 국내 대회인 청소년 비보이 배틀 우승이다. 그 후 전세계 비보이 4대 대회인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짱’을 먹는 게 최종 목표다. “비-크루는 언제까지 함께 할 겁니다. 자신만의 기량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퍼포먼스는 팀웍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기술이 잘 됐을 때의 쾌감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할 겁니다.” 세상이란 하늘에 항상 자신들의 꿈을 맘껏 수놓고 싶어 하는 비-크루는 오늘도 그렇게 자신들을 얘기하고 표현하느라 바쁘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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