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모임>무의탁 노인에 수의 제공 '사랑의 재봉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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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고달팠던 인생길 떠나는 길이라도 곱게 차려입고 가세요….”

낡은 재봉틀을 돌려 삼베 바지와 저고리,두루마기를 짓고 고붓한 버선볼을 정성스레 다듬어 외롭게 세상을 떠난 이의 상가(喪家)에 전한지 7개월 남짓.

서울서초구서초동과 양재동에 사는 주부 8명으로 구성된'사랑의 재봉틀'이 지금껏 소년.소녀가장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무의탁 노인들의 영전에 무료로 기증한 수의(壽衣)는 모두 50여벌에 달한다.

이들이 수의짓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우연히“수의 한벌 못갖춰 입고 병원 환자복차림으로 화장되는 불쌍한 노인들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부터다.

이미 95년말부터 이웃 상가의 음식품앗이와 헝겊 손가방을 만들어 판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도와온 회원들은 곧바로 동대문시장으로 달려가 남녀 수의 한벌씩을 사 바느질을 뜯은 뒤 제작방법을 연구했다.

그뒤 회원들은 한달에 2번,회원들의 집을 돌며 재봉틀에 익숙한 崔안나(61)씨의 지도로 수의제작에 들어가는 한편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주변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은 끝에 성나자로마을의 나환자,무의탁 노인등에게 정갈한 수의 한벌을 입혀 장지로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후원자도 늘어 삼베옷감 구입비로 한달에 1만원씩 보태주는 사람도 현재 40여명.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도매하는 朴응선(47.보광면업 주인)씨는 이들의 정성에 감동,삼베를 염가에 공급해 주고 있다.

총무 崔영보(52)씨는“무의탁노인 사망시 국가에서 50만원정도의 장례보조비가 나오지만 그 돈으로는 수의 한벌 갖춰입기조차 어렵고,그것마저 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도 많다”며“힘들게 살다 가는 분들께 수의로나마 좋은 옷 한벌 입혀드리는게 우리들의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재봉틀'은 어려운 형편에 상을 당해 수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이나 생활보호대상자등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호출기 015-951-1687. 〈은종학 기자〉

<사진설명>

'사랑의 재봉틀'회원들이 최안나씨의 지도로 형편이 어려운 상가에 보낼 수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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