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순매도 = 원화값 하락’ 이젠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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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외국인이 주식을 많이 내다 팔아 주가가 떨어지는 날엔 원화 가치도 함께 떨어지고, 반대로 많이 사들여 주가가 오르면 원화 가치도 함께 오르고…. 이것이 올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나타난 일반적인 시장 움직임이었다. ‘동조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주식을 판 외국인이 달러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11일과 16일엔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순매도를 했지만 원화 가치는 오히려 올랐다. 18일엔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80억원대(거래소)에 그쳤는데도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33원 오른 달러당 1292원으로 회복했다.

동조화가 약해진 이유는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일방적인 순매도 행진을 멈춘 데다 외환시장에서 거래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시중에 달러 가뭄이 시작되자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평소의 절반 정도인 20억 달러대로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들이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나오면 원화 가치가 즉각 반응해 떨어졌던 것이다. 원화 가치가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달러당 1513원)으로 떨어졌던 지난달 24일엔 거래량이 19억 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외환시장의 거래량은 30억 달러대로 회복됐다. 미국과의 통화 교환협정에 따라 달러화가 들어온 데다 일본·중국과의 협정 규모를 확대하면서 외환시장의 분위기가 호전된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영삼 연구원은 “이달 들어 은행들도 일부 달러를 내놓는 등 수급이 개선되면서 거래량이 늘고 있다”며 “외국인들도 계속된 주식 순매도를 멈추면서 이들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른 것은 외국인이나 주가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국제적인 달러화 약세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6일(현지시간) 연방기금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달러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FRB의 제로금리 정책이 경제 회생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달러화의 매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1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는 유로당 1.44달러로 전날보다 3% 하락했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 장중 하루 낙폭으론 가장 컸다.

이날 달러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89.05엔에서 87.82엔으로 가치가 1.4% 하락했다. 95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도이체방크의 북미외환담당 책임자인 러셀 라스칼라는 “달러 가치가 유로당 1.5달러로 떨어져도 놀라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원화 가치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선물 금융공학팀 신진호 연구원은 “FRB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국제적인 달러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며 “연말까지는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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