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총리 지명, 밀어붙이기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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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직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이 보름 동안 보여준 정치력은 실망스럽다. 헌법 정신을 무시한 편법 개각을 추진하다 총리 사퇴를 불렀고, 현재 내각은 총리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대행 없는 정상적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3개 부처 장관은 이미 해임이 결정된 '식물인간'상태로 한달을 보내야 한다. 이들 장관과 해당 부처가 과연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새 총리를 둘러싼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김혁규 불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盧대통령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과의 공식 채널 역할을 맡긴 문희상 당선자는 "김혁규 총리 문제는 여당 지도부의 시험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 차원의 언급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그들대로 탈당하고 떠난 金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반대 입장을 정했다. 이래서는 동의안이 통과할지도 불투명하다. 청문회나 동의안 표결 때 감정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갈 길 바쁜 우리 경제와 민생은 또 한번 볼모로 잡히게 된다.

물론 盧대통령의 새출발이 이처럼 꼬이는 이유가 대통령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특성상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고, 6.5 재보선이 코앞이라는 점도 서로 양보를 어렵게 만든다. 청와대가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정무수석을 폐지함에 따라 국회와 여야 정치권을 상대로 한 사전 절충.조정 기능이 약화됐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盧대통령은 이 같은 요인 외에도 혹시 자신의 독단이나 오기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고건 전 총리의 사퇴 파문은 헌법에 명시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청와대가 멋대로 해석한 데서 비롯됐다. 盧대통령은 헌법이 총리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정신을 깊이 새겨 이제라도 정치권과 진지한 협의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