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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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텔레비전에서 퍼즐 게임 사회자가 금값이라고 말한 갈치조림이 저녁밥상 위에 놓여졌다.원지는 밥을 먹으면서 약간 들뜬 목소리로 이사를 가는 문제,주애의 학교 성적,건너편 폐허 마을에 관한 소문들을 연방 주워섬겼다.원지의 표정 어느 구

석에도 구환 몰래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낌새는 느낄 수 없었다.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남자를 속이는 기술이 몸에 배어 있으니까 저 정도의 연기쯤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겠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구환은 평소에 좋아하던 갈치조림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렇다고 아직 뚜렷한 혐의도 없는데 도청 녹음기 테이프에서 들은 내용을 가지고 원지에게 따져물을 수도 없었다.

“주애가 말이에요.요즘 그거 시작한 거 같아요.”

원지가 보통 때와는 달리 높임말을 쓰면서 비씩 웃음을 흘렸다.

“그거라니?”

“몸요.”

“몸?”

“멘스 말이에요.우리 말로는 몸한다,달거리한다 그러잖아요.”

“그래? 우리 주애는 다른 애들에 비해 늦게 하는 편이군.요새 애들 영양이 좋아져서 그런지 중학교 때 하는 것은 보통이고,초등학교 때도 한다며?”

구환이 고등학교 1학년인 주애가 벌써 하나의 여자로 성숙해 가는구나 싶어 문득 감회가 새로워졌다.

“근데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생리통이 좀 있는 모양이에요.처음 당하는 일이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기도 했겠죠.”

“그래서 인상을 쓰고 다니는군.아무튼 여자로서 몸가짐을 잘 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줘야 할 거야.학교에도 날라리 같은 애들 많다며?그런 애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말이야.”

“우리 주애는 그런 애들하고는 질이 달라요.공부나 하는 쑥맥이잖아요.다른 애들이 가수 서태지에게 반해서 떠들어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같아요.주애는 서태지 노래가 노래 같지도 않다더군요.”

“그래도 몰라.쑥맥이던 애가 헤까닥 변하는 수도 있으니까.요조숙녀같은 가정주부가 한번 춤바람 같은 거 나면 무섭잖아.”

넌지시 원지를 찌르는 말을 해보며 구환은 원지의 표정을 재빨리 살폈다.

“하긴 시대가 무서우니까 항상 주의를 해야겠죠.그래도 난 우리 주애는 믿고 싶어요.”

원지의 표정에는 구환이 더듬어 찾고자 했던 그런 기미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그럴수록 구환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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