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염 식품 방치하는 식품안전 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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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식품안전 당국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경찰청은 그제 “구제역 발병 우려로 수입 금지된 중국산 소시지 껍질 4.3t이 미국산으로 위장돼 통관된 사실이 적발됐다”며 “이를 알고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들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문제 제품이 세관을 통과한 직후인 지난 7월 중순 미국 정부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고도 “통관 절차가 끝나 관세청으로 업무가 넘어갔다”는 이유로 제품 회수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같은 날 발표된 식약청의 ‘보세창고 위생 실태 점검 결과’는 수입식품 위생 관리가 얼마나 엉터리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424개 보세창고 중 무려 44%가 전혀 위생 관리를 해 오지 않았고, 심지어 12곳은 농약 등 독극물과 수입식품을 함께 보관하고 있었다.

검역·보세 당국을 믿고 병균이나 독극물에 오염됐을지도 모를 수입식품을 식탁에 올린 국민들은 먹거리 안전의 볼모가 된 셈이다. 유독성 식품을 만들어 파는 중국 업체들을 손가락질하지만 남을 흉볼 일이 아니다. 안전문제를 알고도 버젓이 방치하는 우리 당국의 도덕적 해이도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식품안전 당국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시민 60%가 “식품 유통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국가권익위가 어제 내놓은 공공기관 청렴도 순위에서도 식약청은 18개 정부 외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올봄 ‘생쥐 머리 새우깡’ 사건 이후 정부는 먹거리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를 잘 갖추어도 일선에서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경찰은 업무를 소홀히 한 검역 공무원들과 보세창구 관계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식품안전 관련 일선 창구들에 대해 일제 감사를 벌여 법과 제도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먹거리 안전은 국민의 생명권이다. 그런 점에서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공직자들에게는 채용과 보직 부여에 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평소에 소명 의식과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돕는 일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