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복권 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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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세계의 복권발행 총액이 1천억달러를 넘어선지도 2년이나 됐다.지역별로 나눠보면 45% 안팎을 차지하는 유럽이 항상 1위고,미국.캐나다등 35% 안팎을 발행하는 북미(北美)는 예나 이제나 2위다.다소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

만 매년 12% 안팎에 머무르고 있는 아시아.중동지역의 3위도 변동이 없다.그런 까닭인지 복권과 관련한 화제가 가장 풍성한 곳도 유럽이다.언론들은 복권제도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행심에만 빠져들게 한다는 비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누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 하면 앞다퉈 대서특필한다.

당첨자들은 갑자기 유명인사가 될 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까발려져 수난을 겪기 일쑤다.94년말 영국에서 신종복권이 발행된 뒤 처음으로 1천1백만파운드(약 1백50억원)씩의 당첨금을 거머쥔 두 사나이가 대표적인 예다.세번 이

혼한 경력의 술주정뱅이인 한 사나이에게는 전처와 자식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고,또다른 사나이의 양모(養母)는“내 보석을 훔쳐다 팔아 복권을 샀으므로 당첨금은 당연히 내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럽 일대에'복권 정신병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영국에서는 매주 같은 번호로 사던 복권을 사지 않는 바람에 2백만파운드의 당첨금을 놓쳤다고 생각한 한 사나이가 자살했고,프랑스에서는 휴지조각이 돼버린 옛날

복권을 들고와 당첨금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간혹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액의 당첨자들이 세상에 널리 공개되지 않으니 유럽에서처럼 당첨 후유증을 겪지는 않지만 90년부터'즉석 복권'이 도입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인스턴트 복권'이라고도 불리는 이 복권은 동전 따위로 긁어내면 당첨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전체 복권의 3분의 2가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영국 당첨자의 양모처럼'내가 사준 복권이니 당첨금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횡성에서의 에피소드(본지 3월16일자 31면 보도)가 바로 그렇다.사다준 즉석 복권중 2장이 4천만원에 당첨되는 바람에 이웃사촌간에 불화가 생겼다는 얘기다.확률 수백만분의 1에 불과한'어리석은 장난'이 정의(情誼)마저 끊게 되니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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