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수석이 몸통의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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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韓寶)사건의 첫 공판이 열리면서 거액대출배후에 청와대 경제수석의 대출압력이 있었다고 검찰이 발표함으로써 이 사건의 진상규명 가능성이 한층 밝아졌다.지금까지의 수사를 종합한 검찰의 기소내용을 보면 홍인길(洪仁吉)총무수석비서관의

말만 듣고 은행장들이 거액대출을 결심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삼척동자라도 믿을 수 없다는게 상식적 판단이었다.그야말로'깃털'만 드러냈을 뿐'몸통'의 실체를 감춘 검찰의 수사종결은 국민적 분노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공판개시와 함께 청와대경제수석의 압력이 추가로 밝혀진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검찰발표로도 과연 경제수석이 몸통의 실체였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한보에 대한 거액대출은 93년부터 96년까지 3년간 3조원 이상이 집중 대출됐다.이 기간중 경제수석을 지낸 한이헌(韓利憲).이석채(李錫采)

양씨의 말만 듣고 은행장들이 대출을 결심하기엔 너무나 큰 액수다.

가령 당진제철공장이 국가적 기간산업으로 민간은행의 돈이라도 총력투입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선택이 있었다면 별문제지만 이번 검찰의 추가발표로도 그런 내용은 없다.한보부도후 모든 경제각료들은 거액대출의 배경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청

와대 경제수석 혼자 이 거대사업의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못된다.

더구나 경제수석이 대출압력을 넣게 된 동기가 총무수석의 부탁 때문이라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중대한 경제정책의 결정과 그 집행에 청와대 총무수석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따라서 경제수석은 총무수석의 그림자에 머리를

끄덕였을 가능성은 있어도 총무수석의 부탁 그 자체가 행동을 재촉한 동기는 되지 못한다.하물며 마지막 압력부탁은 洪씨가 국회의원이 된 뒤에 이뤄진 것이라니 검찰은 더이상 요령부득의 설명을 말기 바란다.

국민의 불신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납득할만한 진상을 규명해 경제수석을 움직이게 한 진짜 배경과 이유를 밝혀내는 것외에 딴 길이 없음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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