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김현철씨는 증언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현철(金賢哲)씨가 뉴스전용 케이블TV인 YTN의 사장 선임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녹음테이프가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그동안 김현철씨가 정부 인사에 간여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고

보니 오히려 황당한 감마저 준다.

우리는 그 녹음테이프에서 몇가지 기막힌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는 김현철씨가 정부의 정보 보고를 일상적으로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아무개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장인에 대해서도… 걱정이다”운운

하는 말은 金씨가 거의 매일같이 정부의 어느 특정기관의 정보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소리로 들린다.그것이 안기부의 한 차장보가 정기적으로 보고했었다는 비밀보고인지,경찰정보와 같은 것인지,아니면 청와대에 올라오는 각종 보고들을 다 보고

있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런 종류의 보고서를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다.이런 보고를 볼 수 있는 金씨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 이 점에 대해 정부,특히 청와대는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매일 그런 보고를'올리는'기관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어야 한다.그런 보고들이 비밀로 분류되는 것인지,아니면 통상문건에 불과한지는 몰라도 만약 金씨가 그것을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정보를 올리고 있었다면

그런 기밀 또는 정부문건을 유출하는 정부기관의 위법성은 반드시 따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 녹음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아버지께서도 상당히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이 말은 이미 어느 가족의 영역에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대통령의 권력이라는 것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이다.이런 행위에 대해 대통령인 아버지는 청와대의 권력

을 아들이 멋대로 남용한 것인지,아니면 묵시적 양해 속에 개입한 것인지 밝혀야 할 입장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측은 그동안 김현철씨의 국회 한보(韓寶)사건 청문회 증인채택 여부를 놓고“증거없이 소문만 가지고 증인출석요구는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국회가 지금까지 채택한 증인들이 합당한 증인인지 여부에 관해 일일이'증거실질심사'라도 실

시했다는 말이 없었는데 유독 金씨에 대해서만'증거없음'을 이유로 증인채택을 거부한 것은 석연치 않았었다.그런데 이제 그 분명한 증거가 나왔으니 金씨를 증인으로 소환해야할 합당한 사유가 발생했다는 점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측은 녹음테이프가 YTN 인사에 관한 것이지 한보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만약 신한국당이 은행장들에게도 혹시 그런 전화 녹음테이프같은 것이 있는지 여부에 관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런 장담은

하지 않는게 합당할 것이다.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만약 이처럼 정부 인사에 광범하게 개입했다면 그것이 한보에 대해 거액 대출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은행장들에게는 가장 큰 외압(外壓)요인이 아니었을까,그것이 바로 깃털 아닌

몸체일 것이라고 의심한다고 해서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신한국당측의 말처럼 야당이'소문에만 근거한''정략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몇마디의 증언으로 근거없는 뜬소문을 일축해버릴 수 있을 것이며 해묵은 의혹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일부에서는 金씨를 해외로 보내자고 하는 모양이다.만약 지금처럼 金씨가 정부의 공조직 밖에서 정부의 각종 정보 보고를 보면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인사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터에 외국에라도 나가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감당하

기 어려운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사태가 악화된 연후에는 사실을 진실되게 증언해도 비뚤어진 상황을 바로잡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지금 시중에는 위기설(危機說)이 파다하다.그 위기설의 핵심중 한가지가 바로 한보사태다.그런 위기는 정면돌파할 수밖에 다른 묘방이 있을 수 없다.사실에 대한 은폐가 있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그것이 한보사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다.거기에 무슨 비공개회의니,TV 생중계 거부니 하는 조건이 붙을 수 없다.

金씨가 국회 청문회에 나가 공개증언을 통해 그에 대해 쏟아지는 의혹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그것이 그가 지금까지 사적(私的)으로 간여해온 국정에 공적(公的)으로 책임지는 첫 행위가 될 것이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