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속세법 개정 불구 전환사채 변칙증여 규제 불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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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농심의 2세 대주주들이 전환사채(CB)를 이용,농심 지분을 크게 늘린 것을 계기로'CB를 이용한 변칙증여'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CB를 통한 변칙증여를 막기 위해 지난해 상속세법을 고쳤지만 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구멍'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법령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말 신동원(辛東原)농심 사장.동륜(東崙)율촌화학 부사장.동익(東益)농심가 사장등 신춘호(辛春浩) 농심회장의 아들 3형제가 농심이 발행한 전환사채를 사들인뒤 이를 주식으로 전환,농심의 지분을 크게 늘린데서 비롯됐다. 〈본지 3월8일자 27면 참조〉

옛 상속법에는 전환사채를 이용한 이같은 지분 변동을 규제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개정 법률은 이들 3명의 2세 대주주들이 농심의 CB를 싼 값에 사들인뒤 주식으로 전환,시세 차익을 볼 경우 사실상의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돼있다.

그런데 문제는 辛사장등이 이 CB를 농심이나 계열사로부터 바로 사들이지 않고 동서.현대증권등 농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증권사를 중간에 끼워 매입한 것.

이 경우 농심이 2세 대주주에게 CB를 싼 값에 넘겨줘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게 한 것으로 보기가 애매해진다.

국세청 고위 당국자는 10일“농심측이 최근의 지분이동 과정에 대해 증여세등을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는 하지 않고 있다”며“다만 이번 일은 사실상 증여로 볼 수 있는 구석이 많아 증여세 신고기한(3개월)안에 농심이 신고해오지

않을 경우 직권으로 증여 여부 조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동서.현대증권이 농심과 3명의 대주주간 거래를 단순 중개만 했을 경우 증여로 볼 수 없지만 농심측과 두 증권사간에 이면계약이 있었다면 이는 사실상 증여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간에 낀 두 증권사의 거래가 단순 중개였는지,차익을 얻기 위한 정상적 거래였는지를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증여세를 부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CB를 이용한 변칙증여의 범위에 재산을 주고 받는 양측과 관련이 없는 개인이나 법인이 중간에 끼어 있는 경우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CB를 이용한 변칙증여=예컨대 A기업 대주주가 회사를 아들에게 넘기려 할 경우 주당 4만원씩 하는 A사 주식을 그대로 증여하면 세금을 많이 물게 된다.

이 때 값이 싼 CB를 발행해 아들에게 증여하면 세금을 훨씬 적게 낸다.그리고 CB를 받은 아들은 나중에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엄청난 시세차익과 함께 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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