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노총, 이제는 고용 안정에 전념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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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출범한 지 1년이 된 한국노총과 한나라당 간 정책연대의 성적표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노조의 정치 참여’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발족했으나, 성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노총이 공공부문 경영자율화 등 10가지 정책 마련을 한나라당 측에 요청했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관철된 게 없다. 노총이 지난달부터 비정규직법 개정 저지를 명분으로 가두투쟁에 나서면서 정책연대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두 집단의 공조는 시작 단계부터 갈등이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친(親)기업 성향의 정당과 정책연대를 한다는 것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노총이 ‘대결 일변도에서 벗어난 노사관계의 선진화’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 등을 다짐하자, ‘집권당과의 정책연대’라는 노총의 변신에 기대가 쏠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공조’한 것은 노총 출신 4명의 후보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것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니 ‘정책연대가 아니라 자리연대’ ‘정치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노총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한나라당의 무성의에 돌리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노총이 내놓은 정책 요구가 한나라당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개혁을 비롯한 비정규직법 개정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등이 그런 예다. 공공부문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운 여당이 정책 파트너가 바란다고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지 노총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노총은 정체성마저 무시한 정치연대에서 벗어나 노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고용 안정이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사용자 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자리 유지를 위해 서로가 무엇을 양보할 것인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일선 사업장에 제시하는 것이다. 마침 여야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 대화합 기구 마련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동계 대표로 적극 참여해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