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새내각은 한보病을 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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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증은 병 있음을 알리는 정보다.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병 자체다.한보 사태는 통증에 관한 뉴스로서,또는 이 뉴스에 대처하는 검찰의 수사와 국회의 조사로써는 한바탕 소란이나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그러나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틀림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 복합적 질병으로서의'한보병'은 그대로 남아 있다.병이 골수에 이르면 편작(扁鵲)도 소용없다는 그런 극단적 상태를 향해 오히려 이 순간도 병세는 악화하고 있다.

새 내각은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고뇌하는 데는 시간을 쓸 필요가 다행히 없다.모두 달려들어 한보병을 연구하고 치료하기만 하면 된다.이것을 안 고치면 나라가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고치면 나라는 새로운 큰 번영의 페이지를 열게

된다.지는 쪽으로도,이기는 쪽으로도 대소완급(大小緩急)을 가려보건대 이 일만큼 급하고 큰 것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한보병은 한보그룹의 병이 아니라 한국의 병이다.첫째로 금융체계의 병이다.주인없는 은행,유명무실한 감독기구,덩그렇게 석조 건물은 있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중앙은행,이것이 우리나라 금융체계가 가지고 있는 병이다.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금융개혁위원회는 이 내막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필칭 이런데 손을 대는 것은 중기 내지 장기 개혁과제라면서 몸을 피해버린다.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중기와 장기가 먼 앞날에 다가올 것이 아니라 기한이 이미 지나가버린지가 또 한참 지난 과거의 것이라는 사실이다.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모양을 달리한 한보사태가 정치.경제.사회 어디서고 앞으로 잇따라 폭발하게 될 것이다.

한보병은 둘째로는 규제와 허가라는 양날을 휘두르는 정부의 병이다.이 바람에 한국은'될 일이 되는 일 없고,안 될 일이 안 되는 일 없는 공화국'이 되고 말았다.될 일이 되는 일 없게 하는 것이 규제고,안 될 일이 안 되는 일 없게

하는 것이 허가다.다시 말해 규제와 허가는 부패라는 마약 자체가 돼 버렸다.약이기는 커녕 독 가운데도 맹독임에도 불구하고 그 값은 엄청나게 비싸다.

우리는 지금 89년 독일이 통일됐을 때 동독(東獨)경제가 당했던 일을 겪고 있다.이전의 동독 경제는 동구 최고의 생산성과 기술수준을 자랑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현재 우리나라 수준인 1만달러를 훨씬 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독(西獨) 경제와 일단 통합되자 동독의 생산시설과 활동은 치우는데 비용이 더 드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경제의 통합은 경쟁력없는 생산방식을 하루 아침에 모두 쓰레기로 만들어버리고 만다는 무서운 법칙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세계무역기구(WTO)시대의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와 통합되고 있다.이것은 지진을 일으키는 지각판(地殼板.plate) 요동이다.경쟁력이 없는 부문은 쓰러질 수밖에 없다.불행히도 정부와 은행이라는 서비스업은 그 후방효과가 경제 전반에

미친다.그 부패와 비능률의 비용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뺀다.한보는 이 비용 때문에 쓰러졌다.공장을 짓는데 이 비용을 겁없이 지불한 나머지 원가에 경쟁력이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한보가 쓰러졌다고 해서 한보병이라고 부르지만 그 병원체는 정부와 은행체계가 뿜어낸 것이었다.코렉스 공법을 채택한 것이 잘못이라느니,반대로 국내 철강 생산의 13%나 차지하기 때문에 살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기만적으로 남의 다리를 긁는 사람들이다.13%가 아니라 1백%라도 경

쟁력이 없는 것은 모두 쓰러질 수밖에 없다.

통합 탓에 쓰러지는 것이므로 개방을 계속 추진할 것이 아니라 일부 폐쇄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자는 소리도 나올 수 있다.그러나 폐쇄한다고 폐쇄되지 않는 것이 WTO가 가진 글로벌 규모다.고베(神戶)지진을 막는다고 어디 막을 수 있었겠는가.막으려다가는 되레 북한처럼 인민을 굶기게 되는 것이 21세기를 향한 세계 경제의 통합이 가진 파괴력이다.길은 정부와 은행체계의 한보병을 수술하는 것 뿐이다.

강 위 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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