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을 향한 질투 때문에 디바들, 무대 위의 육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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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10면

오페라 막간의 커튼콜 때 주역 가수들이 양손을 맞잡고 함께 인사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동료 가수가 한 걸음이라도 무대 앞쪽으로 나와 박수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무대에서 자기보다 박수를 더 많이 받는 사람은 모두가 라이벌이다. 호주 출신 소프라노 넬리 멜바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디바였다.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테너 존 매코맥이 런던 데뷔 때 커튼콜을 하기 위해 멜바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멜바는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이 극장에서는 아무도 멜바와 함께 인사할 수 없어.” 배역이 다른 동료 가수들끼리도 신경전을 벌이는데 라이벌 가수끼리는 오죽했겠는가.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1727년 6월 런던 헤이마켓의 킹스 시어터. 무대 위에서 주역 가수 프란체스카 쿠조니와 파우스티나 보르도니가 머리채를 잡고 육탄전을 벌였다. 객석에서 시작된 주먹다짐이 무대로 번진 것이다. 2중창을 부를 때도 서로 눈을 째려보면서 불렀다. 이 사고로 오페라단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런던 시민들은 쿠조니와 보르도니 지지자로 갈려 ‘쿠조니 스카프’와 ‘파우스티나 리본’을 하고 다녔다. 뉴마켓 경마장에는 ‘파우스티나’ ‘쿠조니’라는 이름을 단 말이 등장했다. 보르도니와 쿠조니는 1726년 5월 헨델의 오페라 ‘알렛산드로’에 더블 캐스팅됐다. 작곡자는 두 사람이 부를 아리아에서 악보 위의 음표 개수까지 똑같이 했다. 작곡가가 특정 가수를 위해 아리아를 따로 작곡하던 시대였다.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는 1951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극장에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무대에 섰다. 테발디가 약속을 깨고 앙코르곡을 불렀다. 그것도 아리아를 두 곡이나 불렀다. 칼라스는 테발디가 ‘라 트라비아타’에서 조(調ㆍkey)를 반음 낮춰 불렀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더 이상 비올레타 역을 맡지 않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칼라스는 “칼라스와 테발디를 비교하는 것은 샴페인과 코카콜라를 비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테발디는 “샴페인은 금방 신맛을 낸다”고 맞받아쳤다.

물론 두 사람이 라이벌로 비춰진 것은 음반사의 마케팅 전략에 놀아난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테발디는 단 한번도 칼라스를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에 출연한 테발디에게 칼라스가 무대 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사이 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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