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포드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선과 연속성은 근대 자본주의의 지배적 이미지다. 대표적인 것이 철도다. 똑바로 나가는 기차는 산을 무너뜨리고 강에 다리를 놓는 등 자연을 개조시키며 돌진의 욕망을 관철했다. 기차의 등장과 함께 속도·추상 등 사고 체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눈의 황홀』의 마쓰다 유키마사는 “자연계에는 거의 없는 직선의 성질을 가진 철도는 인공성을 강조한 것이었고, 여기에서 선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썼다.

기차의 차장은 영화 필름의 한 컷과 비슷하다. 철도 레일과 침목은 필름과 옆에 난 구멍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카메라에는 총에 대한 은유도 숨어 있다. 촬영할 때 ‘쇼트’라고 하거나, 필름 케이스를 칭하는 ‘매거진’은 탄창을 뜻한다. 타자기도 선과 연속을 쳐내는 기계다. 자판(방아쇠)을 두드리면 글자(탄환)가 연속해 튀어나온다.

마쓰다 유키마사는 “(근대의 발명품인) 철도, 영화, 타자기, 재봉틀, 잔디 깎는 기계, 컨베이어 시스템의 식용육 처리장은 모두 ‘라인’이라는 생각을 중심에 둠으로써 연속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라인은 포드주의”라고 썼다.

포드주의는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고안한 생산방식이다. 차 한 대의 조립 공정을 단순 노동으로 세분하고,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조립되는 부품이 노동자 한 명에게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생산 효율화, 고임금, 업무시간 단축 등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노동자의 소외를 우려했지만 대량생산→대량소비로 이어지면서 전후 30년간 자본주의의 풍요를 만끽한 서구의 지배적 축적구조가 됐다. 1970~80년대 경제위기 때 수명을 다해, 지구화·정보화·탈산업화·탈국가화를 반영하는 ‘포스트 포드주의’가 등장했다.

최근 전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포드사 등 미국 거대 자동차 회사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무한경쟁으로 치달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높다. 오래 전 포드주의에 대해 가장 절망적인 우려를 내놓았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1936)가 문득 떠오른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를 조이던 채플린이 아예 톱니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야 영화적 과장이라 치더라도, 언제든 자본주의에 필요한 것은 인간의 얼굴이라는 명제도 함께 떠오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