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리포트>옐친 사형폐지 지시 러시아 인권개선 봄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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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럽의 인권사각지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러시아가 최근 인권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 인권옹호론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최근 대내적으로는 러시아 사법당국에 사형 폐지를 위한 방안 마련을 지시한데 이어 대외적으로는 유럽회의의'인권및 기본적 자유에 관한 협약 6조'에 서명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크렘린이 이처럼 인권향상문제를 들

고나온 것은 내부적 필요성보다 외부로부터의 요구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즉 지난해 러시아가 유럽회의에 가입할 당시 유럽회의측이“러시아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유럽회의 가입을 봉쇄하겠다”고

한 으름장에 뒤늦게 나마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시대 이후 지금까지 죄인이나 범죄혐의자들의 인권은 존중해주지 않는게 관례처럼 돼 왔다.지난해만 해도 국내외의 무수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62건의 사형이 집행됐다.

재판 진행절차도 느려 범죄용의자들은 재판을 받기까지 최장 2년반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하며 그것도 검찰측 요구가 있으면 감옥에서 6개월을 더 대기해야 한다.96년에는 32만명의 범죄용의자가 재판받기 위해 감옥에서 대기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용의자들이 병에 걸려 죽거나 두들겨맞는 일이 다반사다.

때문에 러시아의 인권개선론자들은“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옐친 대통령의 명령이 전반적 인권향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이 이번에 사형제도 폐지를 지시했다 하더라도 당장 러시아 죄수들의 인권이 향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률 제정권을 지닌 국가두마(하원)가 사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러시아가 유럽회의의 협약 6조에 서명해도 의회 비준과정에서 논란이 재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스크바=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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