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달라져야 할 내각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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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건(高建)신임총리는 내무.교통.농수산부장관과 청와대정무수석.서울시장.국회의원 등을 지낸 그의 경력에서 보듯 풍부한 행정.정치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수서사건때 서울시장으로 청와대압력을 끝내 거부한 강직한 일면도 보였다.

高내각은 길어야 1년도 채 안되는 한시적 내각이다.무슨 큰 뜻을 펴거나 새로 일을 시작할 시간도 없거니와 그럴 상황도 아니다.高내각이 해야 할 과제는 당장 한보사건을 조속히 수습하고,대통령선거를 엄정중립의 입장에서 공명관리하고,5

년임기의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어느 면에서 보나 행정.실무관리능력이 가장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통관료 출신으로 행정.실무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高총리가 이 상황에서는 드물게 보는 적임자라는 생각이 든다.과거 공직수행때의 차분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주견(主見)을 밀고 나가던 그의 자세를 기억하면

서 이 어려운 시기에 그의 최선의 봉공(奉公)을 기대한다.

지금 상황은 심각하다.노동법파동에 이은 한보사태는 김영삼(金泳三)정부의 국정운영방식과 자세의 일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高총리가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그런 점에서 우리는 새내각의 역할과 일하는 방식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정책입안과 추진을 내각이 담당해야 한다.전처럼 청와대비서실의 눈치를 보는 업무방식은 없어져야 한다.내각이 소신과 주견을 갖고 일처리를 해야 한다.

둘째,정치권 눈치도 봐서는 안된다.대선논의가 곧 본격화하면 정치권의 이런저런 압력.간섭이 심하겠지만 정치중립.엄정선거관리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특히 여당의 압력가중이 예상되지만 흔들려서는 안된다.

셋째,한보에 대한 정책.행정적 과오와 책임소재규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새팀은 한보와 무관하다고도 하겠지만 한보해결 없이 원만한 국정추진을 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정부차원의 책임규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도 새내각에

대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관계설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지금까진 대통령이 만기친재(萬機親裁)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고,내각 아닌 비서실 또는 비선(비線)을 통한 정책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런 방식이 실패의 연속을 가져온 것은 경험이

말해준다.이제는 내각에 과감하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 내각중심의 국정운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처럼 달라진 국정운영방식으로 새내각이 빨리 정부의 중심을 잡고 일하는 태세를 회복해 경제회복 등 시국수습에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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