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포커스>땜질처방에 멍든 실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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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아이 돌 잔칫상에 선물로 올려진 1억원짜리 예금통장'-.

정부가 21일 저축증대 대책을 발표하고 나서자 시중에는'억(億)둥이'란 말이 퍼졌다.증여세를 한푼도 물지않는 1억원짜리 예금통장을 부모로부터 선물로 받는'억둥이'도 등장하리란 이야기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등에서는 즉각 반대성명을 내고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나섰다.정책을 거꾸로 펴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의지를 내세워 강력히 밀어붙였던 금융실명제에 정부 스스로 흡집을 내는 것은 물론 세제의 기본원칙에 상치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경제원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세법 개정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지난 3년동안 워낙 자주 손을 댄데다 선거를 앞둔 올해마저 섣불리 손댈 경우 정치논리에 오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연초의 이같은 큰소리는 두달도 채 못가 쑥 들어갔다.금융소득 종합과세에 따른'과감하고 광범위한'보완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집권여당 대표의 국회 연설이 있은지 이틀만에 정부는 다시 세법에 손을 대기로 한 것이다.

이번만이 아니다.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금융실명제 탓이라는 지적이 거급됐고 그때마다 땜질식 임시방편적 처방이 내려졌다.

그렇게 문제라면 찔끔찔끔 누더기 처방을 내릴게 아니라 차라리 금융실명제의 문제점을 본격 논의하는게 낫지않나 싶다.

증여세를 면제해준다는'억둥이예금'을 허용키로 한 것도 종합과세를 피하려는 숨은 돈을 끌어내자는 취지에서다.그러나 이렇게 되면 차명예금을 근절해야 할 종합과세제도만 자꾸 구멍을 뚫어놓는 셈이 된다.금융실명제에 대한 논의는 금기시하면

서 정치흥정으로 방치할 일이 아니다.실명제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토론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공연히 초기에 내건 정치적 개혁의지에 얽매여 뒤에서 슬금슬금 허물어내리는 식의 정책은 어느모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재찬 경제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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