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 재팬’ 같은 이름 어디 없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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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16면

‘사무라이 재팬’.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86>

듣는 순간 흠칫했고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사무라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단호한, 그리고 비장한 기운이 느껴져서였다. 내년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이 내건 또 다른 이름이다. ‘야구에 무사도 정신을 담겠다?’

사무라이라는 말은 원래 ‘장군을 모시는 사람’이란 뜻이었지만 훗날 무사(武士)라는 포괄적 의미가 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서양으로 따지면 ‘기사(騎士)’ 정도로 받아들인다. 사무라이 정신은 일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요, 일본 밖에서 일본을 볼 때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그런 단어를 야구대표팀에 붙인 건 WBC 초대 챔피언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내세우고 싶다는 의미겠다. 또 그 무사도 정신으로 2회 대회에 임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엿보인다.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함으로써, 즉 팀에 또 다른 이름을 붙임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준다는 거다. 우리가 기억하는 1969년 메이저리그 ‘기적의 메츠(Miracle Mets)’나 올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미국 농구 대표팀에 붙여졌던 ‘더 리딤팀(Redeem Team·금메달을 되찾아 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같은 표현이 그런 예다. 세상이 그들을 기억함에 있어 그냥 그때 그랬던 몇 년도 어느 팀이 아니라 그들을 상징하는 한마디를 붙임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리 국가대표팀은 어떤가. 9전 전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그 팀. 대회 첫날 미국전에서 9회 말 8-7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순간부터 결승전 9회 말 그림 같은 병살타를 유도하며 쿠바를 3-2로 꺾었던 그 순간까지 시종일관 국민의 가슴을 감동과 환희로 수놓았던 그 팀의 이름은 뭔가. 그저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야구팀’(길다)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멋진 이름을 붙여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 WBC에 출전할 대표팀에도 메시지가 담긴, 그런 명칭이 있으면 좋겠다. 시즌이 바뀌면 그때마다 팀만의 개성 있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2007년 SK 와이번스가 내걸었던 ‘스포테인먼트’라든가 올해 버전업해 ‘스포테인먼트 2.0’이라고 표현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그리고 두산이 ‘스피두, 파워두, 허슬두’라고 내거는 그런 슬로건과는 또 다른. 그 시즌에 그 팀이 표현하고 싶은 자신들만의 메시지를 담아내자는 거다. 자신의 팀에 어울리는 개성을 찾아 팀 이미지, 프랜차이즈 성격 등과 매칭하면 그럴싸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선수들의 플레이와 그 메시지가 연결될 때 팬들이 가슴속에 담아 갈 그 뭔가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경기를 통해, 승부를 통해 플레이만으로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이제는 자만이다. 그 정도의 ‘재미’만 줘서는 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연 관중 500만 명을 넘어선 프로야구라면 팬들은 이미 홈런의 짜릿함, 삼진의 시원함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의 수준·기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있다. 그들이 찾는 건 교훈과 감동이다. 그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그래야 올해 찾아온 500만 관중이 다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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