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경쟁력 강화 말뿐-지원재원 확보 791억 목표액 59% 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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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독산동 삼성시장 재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김근배(62)사장은 정부가 제공하는 유통구조개선자금을 빌려쓰기 위해 서둘러 15가지가 넘는 자료를 꼼꼼히 챙겨 관계기관에 제출했다.

정부의 지원한도는 재건축비의 50%.이 때문에 그는 총67억원의 소요경비 가운데 넉넉잡고 20억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가 지원받은 금액은 9억4백만원.건물통로.부대시설등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오로지 순수 판매시설만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의 50%를 계산했기 때문이다.실질적으로 재건축비의 50%가 아니라 10~20%가 고작인 셈이다.

그렇다고 9억4백만원이 일시불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담당 은행에 4개월안에 담보를 넣고 공사 진척에 따라 연차적으로 받아내야 한다.담보가 적으면 그만큼'지원'금액도 깎인다.

유통시장이 지난해 개방되면서 외국 대형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몰려오고 있다.이에 따라 통상산업부는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우려되는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이른바'경쟁력 강화'에 나섰다.전국 1천5백개 시장 가운데 10년이상 된 노후시장의

재개발 지원에 나선 것이다.중앙과 지방정부가 절반씩 1천3백44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해당 상인들에게 연리 7%로 3년거치 5년분할 상환토록 했다.

그러나 자금조성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쳤다.지방정부의 재원확보 어려움 때문에 당초 정부 발표의 절반 수준인 7백91억원만 조성됐다.

게다가 까다로운 절차와 조건 때문에 집행된 돈은 조성금액의 절반인 3백7억원에 그쳤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서울에서 두드러져 융자한도를 20억원에서 40억원으로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성금액 1백80억원 가운데 쓰지못한 돈이 49억원에 달했다.게다가 올해 2백억원을 새로 집행해야 하는데 쓰겠다는 곳이 없어 난감한

실정이다.

시장 관계자들은“땅과 건물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는 임대시장은 융자가 쉽게 이뤄지는 반면 사업자가 수백,수천명인 분양시장은 담보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융자가 제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가운데 분양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도시의 경우 80%,중소도시는 90%에 달하기 때문에 분양시장에 대한 융자지원이 안이뤄지면 재원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분양시장이 재개발 지원금을 얻기 위해서는 점포주 80%이상의

동의를 얻어 건축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각 구청에서는 사실상 1백% 동의를 얻지 못하면 민원이 야기된다는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건축허가가 이처럼 어려운 판에 지원금 신청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시장협회 유영수전무는“예전에도 유통 근대화 재정자금이라는 유사 기금이 있었으나 그때도 필요한 시장들은 전혀 지원받을 수 없는 절차상 장벽으로 결국 1백여억원이나 되는 돈을 매년 이월시키다 유야무야 없어졌다”며“이같은 형식적인

지원보다 유사 시장 협업화사업을 추진,상인들간 공동구매.판촉활동으로 원가를 줄이는 방향으로 자금을 지원해 주는게 순서”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사진설명>

정부가 재래시장의 재개발을 위해 마련한 유통구조개선자금이 비현실적인

운영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사진은 서울청계8가 벼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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