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 할머니의 눈물과 대통령의 각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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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한 장의 사진이 국민의 가슴을 때렸다. 새벽에 시장을 찾은 대통령의 품에 안겨 무시래기를 파는 할머니가 흐느끼는 장면이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사진에는 눈물이 흘렀지만 냉혹한 위기의 현실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대통령은 할머니에게 20년 동안 써오던 목도리를 주었다. 그런 마음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다.

대통령에게 솔로몬의 해법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사실 무리다. 위기가 바깥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지혜로운 정책수단을 써보려 해도 외국의 금융파도가 출렁이고 수출시장이 쪼그라들면 정책효과는 줄어든다. 국내에서도 대통령은 정치권에 둘러싸여 있다. 예산안을 제출했지만 여야가 싸우고 있고 법안 통과는 막혀 있다. 제1야당 민주당 대표가 거부하는 바람에 청와대 회동도 무산됐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과 같은 위기 때는 지도자의 각오와 행동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에 간 광부와 간호사를 모아놓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눈물을 흘렸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가족을 껴안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위기 걱정에 “잠을 잘 못 이루는 때가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라디오 연설 때마다 민생을 걱정했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위기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왠지 아직도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게 별로 없다.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 때 순간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서민과는 거리가 먼 통화문제다. 서민은 지금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문제가 공포스럽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상황이 악화되면 (정부의 거시경제협의회를) ‘워룸(War Room:전시작전실)’ 체제로 전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준비만 되뇌고 있을 것인지 답답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경제대통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의 특장을 발휘해 구체적 대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일종의 국가비상사태로 인식, 본인이 직접 워룸을 지휘하고 국난극복대책을 이끌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손을 내밀어 야당과 박근혜 전 대표세력도 끌어안아야 한다. 비상한 대통령이 나와야 비상한 각료가 나오고 여권이 비상하게 움직인다.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국회가 저런 행태를 보이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