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탈북>첸치천등 외교 실세와 정친-황장엽비서 '중국인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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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에서 일을 일으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국벗들에게 폐를 끼친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2일 황장엽(黃長燁)북한노동당비서가 베이징(北京)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 작성한 자술서의 마지막 문장에 등장하는 黃비서의'사랑하는 중국벗들'은 과연 누구인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黃비서의 중국벗들을 크게 개인적 친교에 따른 사람과 공식접촉에 따른 사람들로 나누고 있다.먼저 북한.중국 정부간 접촉에 따라 확대된 黃비서의 벗들을 살펴보자.

黃비서는 50년대 말엽 중국에서 전개된'대약진운동'기간중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金日成)을 수행하면서 중국 각계인사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黃비서는 金이 마오쩌둥(毛澤東).펑더화이(彭德懷)등 중국 지도층 인사들과 요담때 배석,자연스레 중국 권력의 심층부와 인연을 맺었다.

중국 권력층에서 黃비서와 가까운 사이였던 인물로는 우선 한국전쟁 정전회담 중국측 대표였던 황화(黃華)가 꼽힌다.

두사람은 황화가 71~76년 외교부장을 맡았을때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또 현외교부장인 첸치천(錢其琛)과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장직을 맡고있는 리수정(李淑錚)과도 상당한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스스럼없이 黃비서를 라오펑요우(老朋友)라 부른다.

그러나 黃비서의 보다 중요한 중국내 인맥은 중국공산당과 정부내 각 분야에 포진한 북한유학생 출신 부국장급 인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김일성종합대학 유학생들로 65년 김일성대 총장에 오른 黃비서와 두터운'관시'(關係)를 맺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베이징대 교수인 추이잉주(崔應九)의 경우 63년 김일성대에 유학했을 때부터 30년 넘게 우정을 쌓아왔다.

崔교수는 87년5월 김일성 방중(訪中)때 중국측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펑위중(馮玉忠)전 랴오닝(遼寧)대 총장도 黃비서와 가까운 사이다.馮교수는 90년대 들어 남북한 학술교류에서 중개자 역할을 맡아 남북한 모두에 지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많은 중국인맥에도 불구하고 黃비서는 지난 92년 한.중 수교에 따른 북한.중국 관계악화와 94년 김일성 사망으로 중국내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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