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진술을 통해 본 황장엽의 통일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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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황장엽(黃長燁)북한 노동당비서는 우리 주중(駐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서의 진술을 통해“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의 화해.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의 서신과 대화록에서도'평화통일'은 그의 최종 이상이자 귀결점임이 누누이 감지되고 있다.黃비서는 그러나 궁극적 평화통일을 위해선 남(南)의'힘에 의한 평화유지''식량지원'등 단기과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을 정리해 본다.

◇평화통일 원칙=그는 우리측 기업인과의 대화에서“전쟁 이외에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며 전쟁배제를 절대원칙으로 강조했다.그는'어떤 희생'과 관련,“내 생명은 물론 가족.동지들의 가슴아픈 희생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망명후 진술에서도 그는“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마지막까지 남북 화해.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라는 희구를 드러냈다.

◇평화통일 방법론=黃비서는 우선 남이 경제부강.군사력강화로 힘에 의한 평화유지에 힘쓸 것을 역설했다.그는 1월서신에서“평화통일을 실현하자면 남북간 차이를 하늘과 땅으로 만들라”며“남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으면 평화통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아무리 경제를 발전시켜도 북의 침공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다”며 군대.안기부 강화를 남측에 촉구해왔다.

김덕홍(金德弘)부실장도“우리에겐 상상외의 군사력과 알려지지 않은 신병기가 많다”며“어떤 전쟁도 막기 위해 남한의 군사력 증강은 시급하다”고 黃비서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쌀지원=黃비서는“이 시기에 전쟁을 방지하려면 북한에 식량을 원조해야 한다”며“식량을 원조한다고 북이 부강해지는 것도 아니며 호구지책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군량미 전용설,쌀수송선 인공기 게양등으로 격앙됐던 우리 정서와는 다른 제언인 셈이다.

그는 또“원조방법도 정부차원이 아닌 사회.종교단체 명의로 해야 북한사람들이 받는다.비밀로 해봐야 백성들은 다 알게 된다”며 북한특유의 자존심을 고려한 실리.명분 병행원조를 제안해왔다.

◇향후 평화통일 기여=黃비서는 “(귀순하면) 평화통일을 위해 대표부 고문으로 이름을 내지 않은채 학생.노동운동을 바로잡고 조국통일을 위해 옳게 싸우도록 이끌겠다”고 했다.대표부는 우리측의 대북.통일 관계기관으로 유추된다. 〈최훈 기자〉

<사진설명>

北차량 한국대사관 접근 북한대사관 번호판을 단 차량 한대가 14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 건물로 접근을 시도하다 포기,되돌아가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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