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北·日 실질적 관계개선의 기회 되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한과 일본이 22일 평양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했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1차 정상회담을 한 지 1년8개월여 만이다.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에 남아 있던 일본인 납북자 가족 5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해결로 남아 있는 납치의혹자 재조사와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협의 재개 합의 등 쌍무현안의 해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대북제재법 발동을 중지하고 식량.의료품을 2개월 내에 지원키로 약속했다.

비록 획기적 성과는 아닐지라도 양측이 대결보다는 대화의 수순을 찾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양측의 관계진전에 속도가 붙기를 바라며, 이번 만남이 앞으로 재개될 6자회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우리는 특히 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이며 6자회담을 활용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대목에 주목한다. 그는 지난달 중국 방문 때도 "인내심과 신축성을 갖고 6자회담 과정에 적극 참여해 회담 진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말한 바 있어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2002년 북.일 평양선언 후 딱 한달 만에 북핵사태가 불거지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되면서 북.일 관계 및 동북아 정세가 요동쳤던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가시화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난관이 있을 수 있다. 그 때문에 북한과 일본이 이번엔 중간에 좌초하지 말고 실질적인 정상화의 기틀을 다지길 당부한다.

일본과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사실상 큰 틀에서 해결한 모습은 400여명 이상의 납북자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문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일 간 납북자 문제의 해결과정은 이제 한국도 일반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임을 보여주고 있다. 납북자 가족들의 절규를 언제까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핑계로 외면할 것인가. 우리 정부도 일본 사례를 교훈 삼아 슬기로운 해법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