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不信과 체제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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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사건 수사가 정치권으로 옮겨지면서 수사의 본질이 흐려지는움직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이번 사건의 핵심은 수조원에 달하는 불법대출에 누가 외압(外壓)을 행사했느냐다.검찰의 수사도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게 당연하다.그러나 검찰이 소환하거나혐의를 두고 있는 정치권 인물들마다 그 혐의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표시하고 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수십년 가신(家臣)이요,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물이 검찰에 출두하며 .깃털'론을 펴는가 하면 민주계의 핵심인사로 대통령후보까지 거론되고 있던 김덕룡(金德龍)의원도 자신이 거명되자“무슨 음모와 장난이 있다 ”는 음모론을 제기했다.이러한 음모론은 정권내부의 권력투쟁설.희생양설 등으로 비화돼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진전되고 있다. 이와 함께 두야당은 김대중(金大中)총재의 분신이라 할 권노갑(權魯岬)의원의 검찰출두를 거부하는 결의를 하는등 검찰의 수사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검찰의 야당끼워넣기 수사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명분이다. 우리는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깃털'이니.음모'니 하는식으로 저항하고 있는 이들을 비호하거나 혹은 범죄인시하고 싶지않다.다만 金대통령과 수십년을 동고동락했던 권력핵심 인물들이 왜 이런 식으로 저항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본인 입에서 한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발표까지 있었는데 끼워맞추기 수사이기 때문에 자진출두는 못한다고 결의하는 야당의 몰염치와 초법적인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그러나 검찰의 수사가야당에 그러한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은 아 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저항들은 검찰수사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정치적인 비리사건 때마다 검찰이 권력 눈치보기에 급급해 미봉책으로 수사를 끝낸 예가 비일비재했다.수서사건만 해도 의원 몇명과청와대비서관을 희생양으로 삼았으나 결국은 노태우 (盧泰愚)전대통령 자신이 사건의 핵심이었다는 것이 임기가 끝난 뒤에야 밝혀졌다. 지금 검찰의 수사를 포함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심각한 수위에 와 있다.이번 사건을 과거와 같이 넘기려 한다면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체제의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다시 한번 외압의 실체에 대한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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