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 전시상황실’을 운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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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금 경제위기가 국민의 생계와 나라의 장래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가 위험에 빠졌다면 전쟁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전시에는 전시체제를 갖추고 그에 걸맞은 비상한 각오와 비상한 대책으로 맞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금의 경제위기를 두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대미문의 비상한 각오와 대책으로 위기에 맞서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이 정부는 대통령의 위기의식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비상한 각오도 비상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평상시의 정부 체제와 행태를 벗어나질 못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부처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보신주의가 횡행하고 정책의 불협화음과 책임전가가 난무한다. 정치권은 나라와 국민의 안위는 아랑곳없이 정략을 앞세운 정쟁(政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위기에 맞서 경제 전쟁을 치르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조언대로 전시에 걸맞은 대통령 직속의 경제 워룸(War Room·전시상황실)을 만들어 총력전을 펼치기 바란다. 이곳에서 시시각각 벌어지는 위기 상황을 파악하고 즉각 범정부적인 대책을 수립·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와 정책 혼선은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경제위기와 관련된 정부 조직과 금융감독 기구도 경제 전시상황실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재편해야 한다.

전시에는 국민 각자가 희생과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극복에도 국민의 희생과 고통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솔선해서 비상한 각오와 자기 희생의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국민에게 인내와 고통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까지 던진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러나 그동안 말만으로는 공직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부 조직과 운영 방식을 전시체제에 맞게 뜯어고쳐서라도 제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경제 워룸을 창설해 위기가 끝날 때까지 운영해야 할 이유다.